[이덕환 칼럼] `액체괴물`은 훌륭한 장난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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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칼럼] `액체괴물`은 훌륭한 장난감이다

   
입력 2019-11-27 18:29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국가기술표준원(국표원)이 100종의 액체괴물(슬라임)에 대해 리콜 명령을 내렸다. 작년에도 금지된 보존제를 핑계로 2차례나 리콜을 했었다. 이번에는 87종의 제품에서 기준치를 넘는 붕소가 검출되었다고 한다. 국표원이 슬라임을 퇴출시키기로 작심을 한 모양이지만, 무작정 리콜을 반복하기보다 슬라임의 생산·수입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국표원의 리콜이 합법적인 조치인 것은 사실이다. 슬라임의 부패·변질을 막아주는 CMIT·MIT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라는 이유로 사용이 금지되어 있고, 지난 1월부터 시행 중인 '완구안전기준'에 따라 붕소(硼素)의 양도 300ppm을 넘지 못하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탈레이트는 슬라임에 넣을 이유가 없는 성분이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가 어린이와 여성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의 생산·유통을 막아야 할 정도로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CMIT·MIT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수입제품에는 CMIT·MIT가 들어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붕소에 대한 우려는 작년 12월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발표한 어설픈 논문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시중에 유통 중인 슬라임에 유럽연합(EU) 기준의 7배가 넘는 붕소가 들어있다는 결과는 EU의 기준을 잘못 해석한 오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무책임한 연구자의 부실한 논문 때문에 수많은 소비자들이 괜한 걱정을 하고, 많은 슬라임 카페 운영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국표원이 EU의 '장난감 안전기준'을 고스란히 복사한 '완구안전기준'을 시행한 것도 서울대의 엉터리 논문 때문이었다. 그런데 EU의 기준은 어린이가 슬라임을 삼켰을 경우 위액에 의해 용출될 것으로 추정되는 용출량이 3세 어린이에게 적용되는 하루섭취허용기준의 10% 이하가 되도록 설정한 것이다. 무작정 겁을 낼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용지침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어린이에게는 그런 기준을 적용할 이유가 없다.



붕소의 독성도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다. 붕소가 포함된 붕사(硼砂)는 콘택트렌즈 세척액에도 사용된다. 피부·눈의 자극을 걱정해야 한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발생·생식 독성도 일부 동물실험의 결과일 뿐이다. 오히려 미국의 환경보호청(EPA)은 1986년부터 붕산(硼酸)·붕사에 대한 모든 규제를 풀어버렸다. 다만 어린이가 붕사 분말을 직접 흡입하는 경우에는 과민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을 뿐이다. 슬라임은 미국의 장난감 회사 마텔이 1976년에 개발한 제품이다. 많은 양의 물을 흡수하는 특성을 가진 폴리비닐알코올(PVA)로 만든 수화젤을 상품화한 것이다. 슬라임은 지난 40여 년 동안 어린이의 손 감각 발달에 도움이 되는 고무찰흙의 훌륭한 대용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2016년에 유튜브를 통해 뒤늦게 알려지기 시작했을 뿐이다.
슬라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지난 10월까지 3년 동안 인스타그램에 등록된 슬라임 게시물이 165만 건을 넘었다. 국표원이 처음 슬라임을 리콜했던 작년 1월에도 9만 건에 가까운 게시물이 등록되었다. 어린이들만 슬라임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이유 때문에 슬라임을 좋아하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지난 10월까지의 인스타그램에서는 슬라임에 대한 긍정감성어가 62.6%였고, 부정감성어는 12.7%에 불과했다. 인체에 유해한 장난감은 철저하게 규제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반드시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참고로 미국·일본·국제표준기구(ISO)는 슬라임의 붕소 함량을 규제하지 않는다. EU보다 어린이의 안전에 신경을 덜 쓰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로부터 훌륭한 장난감을 빼앗기에는 붕소의 독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보존제를 '방부제'라고 부르는 것도 개선해야 한다. 수분이 포함된 모든 슬라임은 생산·유통·사용 과정에서 미생물에 의해 변질·부패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가정에서 만든 슬라임은 하루만 지나면 쉰내가 난다. 보존제를 거부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생물에 의해 오염된 슬라임을 써야 한다. 사용한 슬라임을 굳이 건조시킬 이유도 없다. 일반 쓰레기와 함께 버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물론 환경에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서 슬라임을 빼앗아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어른들이 만들어내는 미세플라스틱이 훨씬 더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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