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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 칼럼] `탄핵상자` 총선 후 `개봉 약속`도 한 방법

이규화 기자   david@
입력 2019-11-26 18:25

이규화 논설실장


이규화 논설실장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단식이 오늘로 8일째다. 황 대표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철회,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공수처법 폐기를 주장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한국당과 보수우파에겐 생사가 걸릴 만큼 중요한 사안들이다. 그러나 황 대표를 단식으로 이끈 손은 이 것 말고도 당내 사정이 있다.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간 갈등이다. 둘은 같은 울타리 안에 있어도 사고와 행동이 다르다. 대외적으로 싸워야 할 때 당내 세 확장에만 혈안이어서 제대로 대안도 내놓지 못했고 전투력도 잃었다. 선거가 다가오자 혼란과 갈등은 더욱 가열됐고 그 소용돌이에서 황 대표는 갈피를 못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단식이란 수가 나왔다.


결국 황 대표나 한국당에게 나아가 지금 정국의 최대 변수는 '탄핵'이다. 황 대표는 복당 탄핵 찬성파들과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한기총 등 일부 기독교계, 일군의 보수 원로 등의 주장대로 탄핵을 덮고 우선 보수가 통합해야 한다는 편에 섰다. 보수통합 카드를 꺼낸 후 첫 행보가 유승민에게 내민 협의 제안이었다. 그러자 탄핵 반대파와 태극기 세력, 탄핵을 줄곧 반대해온 일부 보수 원로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단식은 황의 희생 위에 대동단결하자는 메시지다.
3년이 다 되어가는 탄핵이 다시 불거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적잖은 국민들이 탄핵을 둘러싼 '사실'에 점차 의구심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탄핵 후 들어선 문재인 정권이 자유민주·시장경제라는 헌정질서에 역행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탄핵의 득실을 따지기 시작했다. 박근혜 탄핵이 개인의 탄핵이 아니라 '체제 탄핵'이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믿음, 이념이 사실과 결부되면 신앙인이 신앙을 위해 순교하는 것처럼 강고한 힘을 갖는다. 사실과 진실에 기초한 이념은 어떤 물리력으로도 꺾을 수 없다.

악마는 디테일에만 있는 게 아니다. 얼렁뚱땅 뭉뚱그려 봉합하려는 데도 스며든다. '탄핵의 진실'에 목멘 이들에게 탄핵을 덮자고 하는 말이 통할 리 없다. 그렇다고 탄핵 과정을 복기하며 속속들이 까발리면 상처가 덧난다. 찬성파나 반대파나 돌이킬 수 없는 악감정이 도질 수밖에 없다. 보수통합은 멀어진다. 탄핵 반대파가 잊거나 무시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아직도 국민 상당수가 그들이 말하는 '탄핵의 진실'에 관심이 없다는 냉엄한 현실이다. 더욱이 찬성파는 어엿한 정치세력으로 존재한다. 분열된 자유민주 진영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군소 야당이 표를 얻는다 해도 지지표 분산으로 인한 제1야당(한국당)의 패배를 감수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손해다. 최선은 통합일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대파와 찬성파를 다 끌어안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탄핵'이란 판도라 상자의 뚜껑을 총선 후에 열자고 찬성파, 반대파 모두 약속하고 그 때까지 탄핵을 망각하는 것이 한 방법일 수 있다. 모두가 참여한 약속 천명(闡明)은 구속력이 있다. 탄핵을 덮자는 얘기도 아니다. 탄핵 찬성파를 배척하는 것도 아니다. 탄핵을 묻자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하겠지만, 그냥 묻자는 게 아니고 총선 후 '꼭'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총선까지 오월동주하자는 의미다.

황 대표가 단식 이후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이 같은 방식으로 '탄핵'을 정리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탄핵 반대파와 찬성파가 엉거주춤 동거하다 선거에 임박해 '탄핵 고름'이 터지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범보수 진영의 정치인 치고 12월부터는 통합 논의가 본격 시작돼야 한다는데 반대할 이가 없다. 탄핵 반대에 가장 우측에 서 있는 태극기 세력과 우리공화당도 이 점은 수긍한다. 그들이 진정 박근혜 전 대통령을 위한다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의존해 스스로 군소정당으로 찌그러지길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념이 사실로 뒷받침 되면 인내심도, 자신감도 커진다. 3년을 참았는데 5개월을 못 참겠는가.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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