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여담] 胡服騎射 <호복기사>

박영서기자 ┗ [古典여담] 六驗論 <육험론>

메뉴열기 검색열기

[古典여담] 胡服騎射 <호복기사>

박영서 기자   pys@
입력 2019-11-28 18:38



오랑캐 호, 옷 복, 말탈 기, 쏠 사. 오랑캐의 옷을 입고 말을 타 활을 쏜다는 뜻이다.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중흥지주'(中興之主)로 불리는 무령왕(武靈王)의 고사에서 나왔다. 무령왕이 즉위했을 당시 조나라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중산국(中山國)과 같은 인근 소국 조차도 조나라를 괴롭혔다. 특히 유목민은 조나라에 큰 위협이었다. 조나라는 지리적으로 동호(東胡), 흉노(匈奴) 등 북방 유목민과 경계를 맞대고 있어 이들의 침략에 자주 시달렸다. 무령왕은 그들이 지닌 강점에 주목했다. 호인(胡人)들은 소매가 좁고 옷자락이 짧은 옷을 입어 움직임이 수월했다. 반면 조나라 사람들의 옷은 품이 넓고 헐렁해 불편했다. 또한 말 위에서 활을 쏘는 호인 기병들은 기동성이 뛰어났다.
무령왕은 개혁에 나서기로 했다. 우선 거추장스런 옷을 호복(胡服)으로 바꾸고, 전차 대신 말을 타게 하고 궁술을 익히도록 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하지만 개혁은 혁명보다 어려운 법이다. 예상대로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우선 자신부터 호복 착용을 실천했다. 그리고 숙부인 공자 성(成)에게도 호복을 입어줄 것을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직접 공자 성을 찾아가 설득했다. 결국 공자 성이 호복을 입고 입궐하면서 원로들의 지지를 얻게된다. 기원전 307년의 일이다. 이후 무령왕은 본격적으로 개혁에 나섰다. 기마병을 중심으로 재편된 군대는 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마침내 조나라는 전국시대 후기 진(秦)나라, 제(齊)나라와 함께 3강 구도를 형성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 바람이 부는 변화의 시대이건만 정치적 구태와 사회적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명분 논쟁이나 되풀이하고 허구한 날 밥그릇 싸움을 벌이다가는 나라 거덜난다. 이럴 때 일수록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야 한다. 익숙함을 떨치고 혁신을 선택해야 위기가 극복된다. '호복기사'의 자세가 절실한 요즘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