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장영수 칼럼] `종교전쟁`처럼 돼버린 한국정치](http://contents.dt.co.kr/images/201912/2019120502102269660001[1].jpg?var=3651 "[장영수 칼럼] `종교전쟁`처럼 돼버린 한국정치")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의 정치가 종교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해방 이후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적지 않은 성과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지도자를 마치 종교지도자처럼 숭배하는 군중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정치지도자들 스스로가 민주적인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아닌 종교전쟁을 치르듯이 정치를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이 최근에 비로소 생겨난 것은 아니다. 과거 이승만 전 대통령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개인의 강한 카리스마와 이들을 열렬히 따르는 추종자들에 의해, 그리고 야당과의 합리적 대화나 타협을 통한 민주정치보다는 힘의 우위를 앞세운 권위주의적 통치스타일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도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평화적 정권교체가 반복되었고, 이른바 3김 시대에도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모색되었다. 그 결과 DJP연대라는 초유의 (준)연정이 구성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연정 제안을 했던 것도 나름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양극화가 더욱 극심해지면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실종됐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수사 도중에 자살로 목숨을 끊으면서 갈등은 극단화되기 시작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 사건으로 인해 탄핵되면서 또 다른 극단적 갈등이 잉태됐다.
촛불시위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강력했던 당시에는 이른바 태극기 집회의 힘이 경시되었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열렬하게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박근혜 지지자들을 과연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가? 더욱이 이들 중의 상당수는 '박사모'를 넘어서 '박근혜교'의 골수 신자들이 되어버린 듯하다. 이에 맞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도 '문재인교'라는 평가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대한민국은 박근혜교와 문재인교의 종교전쟁이 치러지고 있는 상황을 방불케 한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들은 양차 세계대전보다도 오히려 종교전쟁들이었음을 기억하고 있는가? 타협을 거부하고 성전(聖戰)을 내세우며 순교를 불사하는 종교전쟁의 참혹함은 그 어떤 전쟁과도 비교하기 어렵다. 물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자가 모두 박근혜 교도는 아니며,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 모두가 문재인 교도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양자의 갈등이 종교전쟁으로 치닫게 된다면 대한민국 전체의 장래가 암울해진다.
이제는 정치를 종교처럼 생각하는 '홀릭'을 벗어나야 한다. 강경한 발언과 주장에 앞장서는 소수의 목소리가 아니라 이성적인 다수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과연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주도하는 세력들에 의해, 혹은 인터넷에 매달려 열혈 댓글부대로 활동하는 사람들에 의해 여론이 만들어지는 것이 과연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한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종교적 확신을 가지고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성적인 대화와 타협을 통해 민주적 다양성을 실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지켜지고 발전할 수 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한 다수를 공론장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럼으로써 종교전쟁처럼 정치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대화와 타협을 통한 민주정치가 바로 설 때,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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