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병일 칼럼] 국회의원 꼭 300명이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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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병일 칼럼] 국회의원 꼭 300명이어야 하나?

   
입력 2019-12-01 12:13

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국회의원이 꼭 300명이어야만 하나?"요즘 이 말을 하면 주변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생각들은 조금씩 다른 듯하다. 그 중 다수는 "줄여야 하는 거 아니야?"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일부 있다. "330명, 아니 400명으로 증원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는 국회의원도 있다. 물론 의원들이 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225(지역구)+75(비례대표)' 원안을 고집하지 않는다. '240+60'까지는 이야기를 해볼 수 있다."(정의당) "'250+50'에 연동형 비율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더불어민주당) "의원정수를 10%(30석) 늘려야 한다.('300+30')"(민주평화당) 때 아닌 '산수식'이 정치권에서 오가고 있다. 초등학교 산수시간도 아닌데, 국민은 어리둥절하다. 225+75, 240+60, 250+50... 두 숫자를 더하면 300인 건 알겠는데, 어떤 기준과 근거로 이런 주장들을 하고 있는 건지 당혹스럽다. 330이라는 숫자도 나오곤 한다. '100% 연동형', '50% 연동형'... 배분방식 변경 주장들도 기준과 근거가 없다.
현 선거법은 '253+47'이다. 패트스트랙에 올라 있는 개정안은 '225+75'. 비례대표의원이 28명 늘어나는 대신 지역구 의석이 그만큼 줄어든다. 비례 배분방식 변경으로 정의당이 최대 수혜자가 된다. 정당별로, 의원별로 유불리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래서인가, 정당과 의원들은 요즘 어떻게 해야 유리할지 계산에 분주하다.

미국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하원의원은 435명이다(주를 대표하는 상원의원은 각 주당 2명씩 총 100명이다). 우리의 국회의원격인 하원의원 수는 1911년에도, 10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435명 그대로다. 인구가 3억 명이 넘고 국토 면적도 우리의 98배에 달하는 미국이 그렇다. 새로 편입된 알래스카와 하와이 주를 위해 1959년에 2명을 늘려 잠시 437명이 됐지만, 1년 후인 1960년 인구조사를 통해 의원 수 할당(apportionment)을 다시 했다. 도로 2명을 감축했고, 1962년 선거부터 435명으로 되돌아갔다.



2명 늘린 게 뭐라고. 20명도 아니고 200명도 아닌데, 1년 만에 원상복귀시켰다. 무엇이 유리할지 덧셈식에 골몰하고 있는 우리 의원들을 보면, 미국 정치인들은 '결벽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100년 동안 미국 인구는 크게 증가했다. 미국 인구조사국(U.S. Census Bureau) 자료를 찾아보았다. 지역구의 평균 인구수가 1910년 21만 328명에서 2010년에는 71만 767명으로 3배 넘게 늘어났다. 미국은 정당이나 의원이 자신의 이해에 따라 선거제도를 크게 바꾸지 않았다. 계산이 복잡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지도 않았고, 의원 수를 늘리지도 않았다. 유권자를 존중하면서 우직하게 경쟁했다.
이번 선거법 개정안의 핵심은 비례대표 의원 수 증원과 배분방식 변경이다. 수시처럼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유권자가 아니라 각 당 지도부가 사실상 결정하는 등 선정 과정이 불투명해 공정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비례대표 의원 수를 증원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 미국도 영국도 프랑스도 비례대표 의원이 없다.

"신의 섭리는 천천히 움직이지만 악마는 언제나 서두른다." 로어노크(Roanoke)의 존 랜돌프가 한 말이다. 선거법 개정, 극한 대립 속에서 서두를 일이 아니다. "의원 일이 3D업종인데, 고생이 많습니다. 요즘은 특권도 없는데 일하느라 힘들 테니 의원 수를 400명으로 증원합시다."(시민들) "아닙니다. 증원하면 국민 세금이 더 듭니다. 의원은 봉사직인데 힘든 건 당연하지요. 몇 년 하다 힘에 부치면 다른 분이 또 자원해서 봉사하겠다고 나서주실 겁니다."(국회의원들)

'동화'를 한번 써봤다. 이런 날이 올까. 가능은 하다. 북유럽의 어떤 나라처럼, 의원들이 자전거로 출근해 10평도 안돼 보이는 의원 사무실에서 보좌관을 공유하며 밤늦게까지 일한다면, 모든 돈 지출을 정확히 기록해 인터넷에 공개해야한다면, 특권은 사라지고 할 일은 많아 그야말로 공복(公僕)으로 살아간다면, 그렇게 대한민국 정치가 '혁신'된다면, 우리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의원 수 증원에도 찬성할 것이다. 선거제도를, 비례대표제를 어떻게 바꾸겠다고 하든지, 의원들을 믿어줄 것이다. 신뢰가 전혀 없는 지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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