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학길 칼럼] 성장없는 분배복지정책의 末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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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학길 칼럼] 성장없는 분배복지정책의 末路

   
입력 2019-12-12 18:33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최근 중남미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정부시위는 우파가 집권한 칠레, 에콰도르, 온두라스뿐만 아니라 좌파정권의 베네수엘라, 볼리비아도 휩쓸고 있다. 각국 시위대들의 공통된 구호는 "좌파든 우파든 우리는 모르겠고 당장 배고픈 민생이나 해결하라"고 요구하며 서민생활고의 상징인 냄비를 들고 격렬한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이는 1960년대 높은 물가와 식량부족에 견디지 못한 주부들이 냄비를 들고 나오며 시작된 전통이라고 한다.


중남미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위기로 많은 나라들이 1980년대에 경험하였던 것처럼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할 경우 이러한 위기는 선진국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신흥경제권에도 전파될 수 있다. 일부 미국과 유럽은행들은 이미 중남미에 많은 대출을 해준 상태이므로 중남미 국가들의 집단적 채무불이행 사태는 세계경제위기로 확산 될 수 있다.
이러한 중남미의 정치경제적 위기는 항상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진행돼왔다. 세계경제가 호황일 때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중남미 경제도 성장하고 좌파든 우파든 집권세력은 재집권을 향해 끝없는 복지정책을 경쟁적으로 남발했다. 중남미 경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었던 1975~1980년 그리고 2010~2013년에는 연평균 3-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1980년대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장기 침체 기간을 겪었고 2016년에는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0.4%까지 떨어졌다. 소위 종속이론에 심취한 좌파들은 소득재분배라는 미명하에 많은 소모성 복지경비지출에 매달렸고 경제구조개선을 위한 사회간접자본과 교육에 대한 투자는 등한히 하였다.IMF는 올해도 중남미지역 경제성장률이 0.2%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남미가 전형적인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를 겪고 있다고 보았다. 경제위기의 징후는 과거 경제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중남미 각국 통화의 평가절하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의 자료에 의하면 올 들어 지난 12월 3일까지 아르헨티나 페소는 달러 대비 37%, 칠레 페소는 15%, 브라질 레알은 9%, 콜롬비아 페소는 8% 하락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IMF에 따르면 올해 중남미의 총부채는 중남미 국내총생산의 78%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중남미 각국의 막대한 정부 부채는 2000년대 초반 원자재 가격에 따른 호황기조에서 각국이 앞 다투어 소모성 복지지출을 확대하였기 때문이다. 중남미 국가들이 국민 한명에게 지출한 사회복지 비용은 2002년에 453달러였으나 2016년에는 894달러로 거의 두 배 증대하였다고 한다.같은 기간 사회복지 지출도 GDP의 8.5%에서 11.2%로 늘어났다. 그러나 FT는 "시위대가 소득과 부의 불평등에 분노하며 긴축정책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중남미 정부가 부채를 줄이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분석하고 있다.




중남미 정치경제 위기의 역사를 반추해보면 한국경제의 과거, 현재와 미래의 성장경로가 투영된다. 중남미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의 기간으로 불리는 1980년대에 장기침체의 늪에 빠져들었을 때 한국은 물가를 안정시키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수출입이 사상 처음으로 균형을 이룬 거시안정화 정책과 연평균 5~6%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적정성장 정책을 유지하였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박정희 대통령 서거, 광주사태 등 격동의 정치난국 속에서도 민주화의 씨앗을 잉태시키고 궁극적으로는 대통령 직선제로 문민정부를 탄생시킴으로써 민주화를 완성해 나갔다는 사실이다.

최근 필자는 북한 경제에 대한 최초의 세미나를 주최한 OECD 본부에서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파리 출장을 다녀왔다. 공항의 한 비즈니스호텔에 체크인하는 순간 한때 가장 강성의 노조활동으로 악명이 높았던 파리도 '유연노동제'로 변하고 있음을 알았다. 우선 체크인 데스크가 없이 몇 명의 담당자가 돌아다니며 이동전화기로 체크인 키를 발급했다. 아침식사를 몇 시부터 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까 새벽 4시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식당은 항상 손님들을 위해 개방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의 근로시간 규제정책과는 전혀 반대방향의 유연한 고용정책이 실시되고 있었다.

내년에도 예산안은 513조원대에 달하는 슈퍼예산으로 올해보다 약 9% 초반대로 증가한 수준으로 편성되었다. 주요 내용으로는 일본 경제보복에 맞서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2조원 이상, 건강보험 지원예산을 1조원 이상, 미래산업에 4조7000억을 증액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2020년 예산안은 총선을 앞둔 선심성 예산으로 가득 차있다.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예산, 청년의 주거·일자리와 자산형성지원, 골목상권 활성화, 보육예산, 건강보험국고지원, 농업직불금, 고교무상교육, 국가유공자보상금 인상 및 6·25전쟁 군경전사자의 제적자녀 위로 가산금 추가인상 등 끝도 없는 소모성 복지예산으로 가득 차있다. 더구나 올해 경제성장률이 2%에도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와 국회는 복지예산파티를 열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중남미 경제처럼 '성장 없는 분배 복지정책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닌가?

피케티(Piketty)가 21세기 자본론에서 강조한 대로 자본주의 경제가 맑스가 예견한 파국을 피하며 지속적 성장을 담보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교육에 의한 인적자본의 육성과 사회 전반적인 총요소생산성의 향상 밖에는 없다. '성장 없는 분배복지의 향연'으로는 디플레이션으로 가고 있는 경제열차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중남미 사태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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