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세 칼럼] 졸속과잉 규제가 경제 다 죽인다

메뉴열기 검색열기

[권혁세 칼럼] 졸속과잉 규제가 경제 다 죽인다

   
입력 2019-12-16 18:32

권혁세 단국대 경영대학원 초빙교수·前 금융감독원장


권혁세 단국대 경영대학원 초빙교수·前 금융감독원장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받은 내년도 달력을 펼쳐보니 세월이 참으로 쏜살같이 흐른다는 느낌이 든다. 연초만 해도 황금 돼지해를 맞아 국민 모두가 희망과 기대를 갖고 출발했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볼 때 대부분의 국민들은 형편이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올 한해 경제분야의 각종 통계를 보자.성장률,고용,생산,수출,투자,소비 등 대부분의 지표가 감소세나 하향세를 보였다. 보호 무역주의로 인한 세계경제 침체를 감안하더라도 기대치에 미흡한 성적표다. 정부의 새로운 정책 효과가 1년 정도 지나야 나타난다고 보면 집권 1년차인 지난해 경제 성적표는 전임 정부와 혼재되어 있고 임기 반환점을 돈 올해의 성적표야 말로 이 정부의 진짜 성적표다. 진보 성향의 문 정부는 지난 2년 반 동안 과거 보수정부 10년간 추진해온 경제 정책과 상반되는 정책을 많이 추진해왔다. 집권 반환점을 지난 현 시점에서 정책의 성과를 냉정히 평가해서 현실 여건과 괴리되거나 실적이 당초 목표에 크게 미치지 못한 분야에 대해서는 보완하거나 방향을 재조정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내년은 올해보다 국내외적으로 불확실성 변수가 많아 더 힘들고 불안정한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안보면에서 북미간 협상 실패 시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한미간 방위비 분담 협상이나 한일간 지소미아를 둘러싼 후속 마무리가 원만히 타결되지 않을 경우 한국의 국가 신용도나 투자, 무역은 물론 금융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돈 앞에는 우방이나 동맹도 가차없이 버릴 태세이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그 동안 한미일 동맹이라는 튼튼한 토대 위에 무역을 통해 성장해왔음을 생각할 때 그 축이 흔들릴 경우 대외 신용도 유지나 경제 안정을 도모하기 어렵다. 금년 내 스몰딜(small deal) 형태로 타결을 예상했던 미중무역협상이 최근 들어 불투명해져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도 내년도 우리 경제를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다. 세계 각국이 보호무역전쟁으로 인한 경제 침체를 탈피하기 위해 저금리 금융 완화책을 펼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간 벌기용 미봉책에 불과하고 거품만 키워 더 큰 경제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유동성 장세는 사상 누각처럼 언젠가는 붕괴될 수 밖에 없으므로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내년은 미국 대선이 있는 해이고 우리나라도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는 선거의 해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가 진행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국가의 주요 정책을 대선에 맞춰 추진할 가능성이 있어 세계가 트럼프의 포퓰리즘적 선거 전략에 따라 요동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내년 총선과 다음해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 정책의 유혹이 거세질 수 있다. 포플리즘 정책의 본질은 유권자를 상대로 표 계산을 해서 표가 더 많은 쪽을 타겟으로 선심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 경우 부자 대 서민, 대기업 대 중소기업, 기업주 대 노동자의 구도로 표가 많은 쪽을 위한 정책의 쏠림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 포퓰리즘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그리스나 중남미 국가 사례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표가 많은 서민 복지 지원을 위해 부자와 기업들에게 규제와 세금 폭탄을 부과함에 따라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내온 부자와 기업들은 해외로 떠나고 국내에는 일자리는 사라지고 세금도 못 내는 서민들만 가득하다. 결국 국가 재정은 파탄나고 화폐가치는 추락해서 국가가 더 이상 국민의 민생고를 해결 못해 IMF와 같은 국제기구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경로를 대부분 국가가 밟아왔다. 하지만 포퓰리즘 정책은 더 이상 중남미와 같은 정치 후진국의 전유물은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심화된 양극화 현상으로 이미 선진국을 포함 전세계에 가장 전염성이 강한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올해보다 한층 힘든 내년을 맞게 될 문재인 정부가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과제는 포퓰리즘이나 이념에 치우친 졸속 과잉 규제의 철폐다. 그 동안 정치권과 정부가 양산한 졸속 과잉 규제로 인해 산업 현장 곳곳에 활력이 사라지고 기업가 정신과 개인의 자율과 창의가 위축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의 투자 확대나 정부가 추구하는 혁신 경제의 생태계가 육성되기 어렵다. 과잉 규제의 대표 사례로는 경직된 주 52시간제와 시장 논리를 무시한 부동산 규제책, 혁신 경제의 상징인 타다 규제법을 들 수 있다.

주 52시간제는 도입 취지와 달리 근로자의 일하는 방식의 선택권을 뺏는 전체주의식 규제로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처럼 침대 길이에 맞추어 사람의 다리를 자르거나 키를 늘리는 규제를 연상케한다. 부동산 규제도 강남 부자를 표적으로 한 대표적인 수요 공급 원리를 무시한 규제로 이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타다 규제법도 포퓰리즘에 경도된 규제로 정부의 혁신 경제 육성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표사례이다. 사고가 날 때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양산된 졸속 규제의 대표 사례로는 현재 국회에 개정안이 상정된 개인정보유출관련 데이터 3법(소위 '개망신법')과 산업안전법, 환경 관련 각종 규제법 등이 있다. 민간 기업이나 금융회사의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상법, 자본시장법상 규제도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규제들이다.

유능한 항해사는 바람의 방향이나 기상변화 등 대외 환경 변화를 수시로 체크해서 방향타를 수정함으로써 배가 목표한 좌표를 이탈하지 않도록 관리한다. 반환점을 지난 문재인 정부도 변화된 대내외 환경에 맞추어 그 동안 추진해온 정책을 재점검해서 방향타가 잘못된 부분은 과감히 조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짧은 시간에 미국에 필적할 경제 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덩샤오핑이란 지도자가 이념보다 실용의 관점(소위 '흑묘백묘론')에서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