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입력 2019-12-25 18:25

차현정 산업부 증권팀장

"유의할 정도의 과도한 수치였다면 2015년이 가장 높았는데 그땐 맞고 왜 지금은 틀리다는 건지 궁금하네요. 옥죄기만 하고 대안이 없어 안타깝고요."

한 대형증권사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본부 관계자는 최근 이렇게 푸념했다. "미래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인데 금융당국은 이런 업계의 위기의식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드러낸 불편한 속내다.

국내 대형증권사들의 부동산 PF 동력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정부가 약 100조원에 이르는 부동산 PF 사업에 대해 강도 높은 규제 압박을 꺼내들면서다.
'자기자본 대비 채무보증의 100% 한도 신설'이 핵심이다. 증권사를 중심으로 부동산PF에 대한 채무 보증, 대출 등 위험 노출 규모가 급격히 늘자 부실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했다. 연말을 앞둔 급작스러운 발표에 업계는 초비상이다. 앞으로의 신규 딜은 엄두를 낼 수 없게 될지 모른다. 한 증권사의 경우 최근 해외 부동산 딜과 관련 약정과 기표를 완료하고도 표정관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해당 증권사의 PF 본부 임원은 "시간은 두고 봐야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좋은 소식을 좋은 소식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일부 증권사는 이미 채무보증 규모가 자기자본 대비 100%를 상회하면서 익스포저(위험에 노출된 금액) 축소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증권사가 부동산 PF 사업을 주요 성장동력으로 삼았던 만큼 당장 줄어들 성장 여력을 걱정하게 된 것이다. 지난 6월 말 기준 부동산PF를 포함한 국내 증권사의 채무보증 규모는 42조4000억원으로 자기자본(58조4000억원)의 72.7%에 달한다. 자기자본 대비 채무보증 비율은 메리츠종금증권(211.5%)·한국투자증권(94.7%)·NH투자증권(68.6%)·삼성증권(51.0%)·미래에셋대우(38.8%) 순으로 높다.

부동산 PF 규제 강화 방안이 발표된 직후 이들 증권사 주가가 일제히 하락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고강도 부동산 PF 규제로 내년 순이익이 2012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할 것이란 관측마저 나오고 있어서다. 2012년 이후 7년여 주요 증권사의 연평균순이익은 25%씩 증가해 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식 거래대금 감소와 시중금리 변동성 등 증권업황 역시 비우호적이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올해 3분기 증권사 56곳의 3분기 당기순이익은 전 분기보다 30% 가까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은행(IB) 부문 수수료가 16% 가량 줄어든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상황에서 방패 삼았던 부동산 PF 부문 실익까지 빠지게 되자 업계 내부 고민이 커지는 분위기다.

하필 금융투자협회장 교체기에 발표된 것은 최악의 타이밍이라는 지적도 있다. 금융당국을 상대로 협상력을 발휘할 새 금투협회장이 설 때까지 숙려기간을 갖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위의 급진적이고도 일방적인 통보식 규제로, 과정에서 어떤 소통도 없었던 걸로 보인다"며 "금투협회장 선거가 진행 중이던 상황에서 일시에 시장을 얼어붙게 하는 센 주제를 터트린 만큼 '왜 갑자기'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그러나 서두르지 않으면 위험하다며 증권사를 계속 압박하고 있다. 금융위의 부동산 PF 규제 제시에 금감원은 곧장 규제 가이드라인 제정 작업에 돌입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금융회사들이 자꾸 부동산으로 가는 경향이 있어서 그걸 바꾸려고 애를 많이 쓰고 있다"며 "자칫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돼 터질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장에서는 "그럼 뭘로 먹고 살라는 것이냐"며 짜증 섞인 반응도 터뜨리지만 이런 접근법이 되레 정부와 당국의 목소리만 키워주는 결과만 낳을까 우려도 된다.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 국내 자본시장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뗐을 뿐이다. 이 정부가 그토록 외친 금융개혁이 구호로만 그치지 않으려면, 자본시장의 진정한 성장을 위해서는 정부의 일관적이고 장기적인 정책이 필수다.

그때는 문제가 되지 않던 사안이 왜 이제와서 문제가 되는지 궁금하다는 업계에 금융당국은 명쾌한 해명을 들려줄 때다.

차현정 산업부 증권팀장 hjcha@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장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