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칼럼] `이념패권주의` 반대운동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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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칼럼] `이념패권주의` 반대운동 시작하자

   
입력 2020-01-01 18:09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탈리아 공산주의 대부 그람시(Antonio Gramsci)는 마르크스·레닌의 폭력혁명 투쟁보다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고도화된 자본주의는 단순한 빈부격차 확대라는 하부구조의 모순으로 인해 혁명을 위한 단계로 접어드는 게 아니고, 상부구조에 대한 개조작업이 뒷받침될 때 공산주의 여건이 성숙한다는 것이다. 정치, 언론, 교육, 문화는 이런 개조과정의 핵심분야다.


이런 분야에서 사상적 '진지'(position)를 각각 구축하고 민중과 민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처럼 지속적인 활동을 전개해나가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게 되어 선거를 통한 권력장악에 성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결국 공산주의는 무리한 혁명이 아니라 이념적 패권 장악으로부터 실현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현 집권세력의 문제의식은 뚜렷하다. 한국사회는 해방 이후 일제의 잔재를 씻어버리지 못하고 외세에 의존하다가 60~80년대 군사독재를 맞았고, 이제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지금은 정말로 우리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민주적이고 자주적으로 결정할 때라는 것이다. 그 방향이 여전히 미국에 의존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인지는 재검토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국가의 모습은 불분명하다. '과정과 결과가 공정한 사회', '경제민주화', '당당하고 자주적인 외교' 등 장밋빛 애드벌룬만 띄워놓았다. 그리고는 무서운 속도로 교육, 언론, 문화예술, 법조 분야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장악해왔다.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적폐청산, 공수처법 제정, 인헌고 사태, 일본 때리기 외교 등 일련의 현상은 그람시주의자들처럼 이념적 패권을 쥐려는 의식적 노력이다. 적폐청산은 기득권세력의 구조적 부패와 타락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권력기관을 장악하기 위한 논리를 제공해준다. 중국의 공안통치 제도를 연상케 하는 공수처 설치마저 그 연장선상에서 합리화된다. 일본 때리기 외교는 민족주의적 감성까지 이끌어내 적폐세력을 친일주의자로 몰아부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다. 인헌고 사태로 사회적인 이슈화가 되어버린 전교조 사상교육 문제는 교육 분야에서 이미 공고하게 구축된 이데올로기적 진지의 심각성을 대변해주고 있다.

조국 사태는 각 분야에 구축해놓은 진지들이 연합하여 벌인 진지전(position warfare)의 모습을 드러내주었다. 진지 하나가 공격당하면, 다른 진지들이 나서서 무한정 지원사격을 가한다. 정치, 연예, 문화예술, 교육, 언론 분야의 경계선도 없이, 조국 수호와 검찰개혁의 목소리 하에 하나로 뭉쳤다.조국 사태 이전에 상당수 국민들은 현 정권의 적폐청산과 반일노선을 단편적 역사전쟁 또는 진보이념 차원에서만 이해했다.


그런데 비상식적으로 조국을 비호하는 목소리로 단결된 지식인 세력을 목도한 국민들은 그동안 벌어졌던 정책들의 배경을 하나로 연결해서 깨닫기 시작했다. 21세기 글로벌 한국사회의 여러 분야가 그람시적인 이념패권을 추구하는 세력에 장악되어 버린 현실 말이다.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적 토론은 생략하고, "내가 가는 방향이 적폐청산이니 이를 따르지 않는 세력은 적폐세력"이라는 식의 밀어붙이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제 국민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명백해졌다. 뚜렷한 이데올로기적 동기를 지닌 어느 한 세력이 실체를 숨기고 살라미 수법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하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 이미 장악한 분야의 진지는 모두가 힘을 합쳐 파괴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그람시주의가 발붙일 수 없게 진지 파괴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운동은 단순히 보수주의나 반공산주의 이념의 이름으로 벌이는 전쟁이 아니다. 특정 이념 옹호 세력이 배타적으로 진지를 구축하고, 진실을 숨기며 대중을 선동해대는 현상을 일반적으로 반대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그람시 진지를 발견한 국민은, 인헌고 학생들이 그랬듯이, 누구나 그 정보를 즉시 공유해야 한다. 각 진지가 내세우는 논리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거짓과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범국민적 토론을 진행해야 한다. 여러 사회단체들이 연합하여 공동성명도 발표하고, 진지내부자 고발도 장려해야 한다. 국민 전체가 일으키는 진실과 토론의 쓰나미(tsunami)로 모든 진지의 벽을 허물어버려야 한다. 21세기 글로벌 한국 사회에서 '반(反)그람시 진지파괴 운동'은 하루 속히 전국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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