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칼럼] `판도라 상자` 건드린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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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칼럼] `판도라 상자` 건드린 트럼프

박영서 기자   pys@
입력 2020-01-07 18:07

박영서 논설위원


박영서 논설위원
새해 벽두부터 제3차 세계대전 발발이라는 우려가 세계를 뒤덮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군부실세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을 폭살시킴으로써 중동 화약고가 터질 조짐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공격은 예상 밖이었다. 1979년 국교를 단절한 이후 미국이 직접 이란 요인을 살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이란에서 가장 강력한 군인을 죽였다. 사실상 이란에 '개전'(開戰)을 선언한 것과 다름 아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주둔 미군, 특히 중동에서의 철수를 외쳐왔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충격처방을 한 배경을 놓고 여러가지 분석이 나온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그가) 미국인을 죽였고, 더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밝혔다. 위협요인을 선제적으로 제거했다는 이른바 '정당방위론'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보다는 이란과의 전쟁이 의회 탄핵국면을 돌파하면서 11월 대통령 선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란에 철퇴를 가한' 대통령으로 국내 보수파들의 표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란은 북한과 달리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갖고있지 않다. 미 본토가 보복공격 당할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트럼프 대통령이 '도박'에 나섰다는 관측이다.

만약 미국과 이란이 군사적 충돌로 돌입하면 그 무대는 이란의 인접국으로,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살해된 현장이기도 한 이라크가 될 것이다. 미국에 있어 이란 땅에서 전쟁을 벌이면 리스크가 너무 크다. '핵 위협'을 이유로 공격을 하면 북한을 더욱 강경하게 만들 수 있고, 러시아의 개입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란 입장에서도 국가 존망의 위기여서 죽기 살기로 싸울 것이다. 따라서 미군이 현재 주둔하고 있으며,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조직이 많은 이라크가 안성맞춤인 것이다.

전쟁터가 어디가 되든, 분명한 것은 이란이 '피의 깃발'을 올릴 것이란 점이다. 이란의 보복조치에 대해 전문가들은 원유시설 공격이나 테러,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을 예상하고 있다. 본격적인 보복 강행 시기는 이란 혁명기념일인 2월 11일 즈음으로 예상된다. 이때는 솔레이마니의 '아르바인' 행사가 열리는 시기이도 하다. '아르바인'이란 아랍어로 '40'이라는 뜻으로, 사망한지 40일이 지난 뒤 치르는 의식이다. 한국으로 치면 49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일이다. 한국은 석유를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다. 이 가운데 중동산이 70% 이상이다. 중동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중동 석유는 모두 끊기게 된다. 제3차 오일 쇼크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게다가 글로벌 실물경제까지 위축된다면 그나마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수출마저 치명타를 입게된다. 이미 국제유가와 금값은 크게 뛰기 시작했다.
반면 미국은 느긋하다. 중동의 에너지에 이제 목매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셰일오일 생산 증가로 미국은 석유 순수출국으로 전환했다. 석유가 부족하면 자국내에서 증산하거나 인접한 캐나다, 멕시코로부터 수입을 늘리면 된다. 천연가스는 더 여유가 있다. 미국의 천연가스 수입의존도는 불과 3%다. 중동 의존도는 0%다. 미국인을 위해 중동지역을 평온하게 유지할 절박감이 없어졌다는 얘기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탈원전정책에 따라 원자력 발전을 줄여가고 있다. 경제에 필요한 에너지를 앞으로 어떻게 확보할 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또한 청해부대의 호르무즈 파견 문제도 다시 들여다 봐야한다. 미국의 뜻에 반하여 이란 편에 설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란을 버리면 향후 중동에서의 입지가 위태로워진다. 자칫하면 중동 현지에서 한국인이나 한국 관련 기관들이 납치나 테러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도라의 상자'에 손을 댔다. 충돌은 쉽지만 종결은 어려울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일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입장에선 촉각을 곤두세워 상황 추이를 주시하며 컨틴전시 플랜을 준비하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겠다. 하지만 중대사를 진지하게 논의해야할 국회는 여전히 시끄럽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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