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예고된 ISD `참사` <투자자-국가간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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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예고된 ISD `참사` <투자자-국가간 소송>

심화영 기자   dorothy@
입력 2020-01-13 07:40

심화영 정경부 차장


심화영 정경부 차장
지난해 성탄절을 앞둔 토요일, 예고 없던 보도참고자료가 배포됐다. 제목은 '이란 다야니가(家)와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결과'로 국무조정실·기획재정부·외교부·법무부·산업통상자원부·금융위원회 범부처 자료였지만 나중에 보니 금융위만 살짝 배포했다. 물론 브리핑도 없었다. 골자는 다야니가 대 대한민국 사건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Investor-State Dispute)에서 한국 정부가 패소했다는 것이다. ISD는 외국에 투자한 투자자가 투자 상대국의 법령이나 정책 때문에 피해를 봤거나 투자 상대국이 협정상의 의무나 계약을 위반해 손해를 본 경우, 해당 투자기업이 아닌 상대국 정부를 상대로 중재를 신청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2012년 한·미 FTA 체결 때부터 ISD 조항이 도입됐다.


이번에 'ISD 약체국' 면모를 드러낸 다야니 사건은 10년 전인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우일렉 우선협상대상자였던 다야니는 한국 채권단에 계약금 578억원을 내며 투자확약서(LOC)를 제출했다. 하지만 채권단은 다야니의 자금 여력이나 채무 승계 계획 등이 부실하다며 인수 계약을 해지했다. 다야니는 "계약금이라도 돌려 달라"고 했지만 채권단은 "계약이 해지된 책임이 다야니에 있다"며 계약금을 내주지 않았다. 2015년 9월 다야니는 ISD 카드를 들고 나왔다. 대우일렉 채권단 중 한 곳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정부의 관리를 받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넓은 개념의 정부로서 소송 대상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소송을 맡은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중재판정부는 2018년 6월 "한국 정부가 계약금과 지연 이자 등 730억원을 다야니에 지급하라"며 다야니의 손을 들어줬다.
정부는 즉각 판정에 대해 2018년 7월 취소소송을 냈다. 정부는 "소송대상은 한국 정부가 아닌 채권단이니 이 사건은 ISD 대상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취소소송을 접수한 영국 고등법원은 2019년 12월 20일 한국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결국 정부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으로 회피하다가 이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 정부는 이란 다야니 가문에 원금은 물론 이자까지 모두 730억원을 배상해야 하는데 이는 앞으로 또 다른 ISD 소송에 악재가 될 수 있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제기한 5조원 규모의 ISD,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의 1조원대 ISD 같은 '큰 싸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ISD는 모두 7건이다. 4건은 소송이 진행 중이고 정식 제소 전 단계인 중재의향서가 접수된 것도 3건 있다. 모두 우리 정부가 진다고 가정한다면 거의 13조원의 유출이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ISD에 취약한 이유로 '전문성 결여'를 꼽는다. 순환보직인 담당 공무원도, 외주를 맡은 로펌도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조차 정부의 비효율적인 대응을 내심 불만스러워한다. ISD가 계속 늘고 있지만 부처마다 '잘해야 본전'인 소송에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응하려 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ISD 대응단에는 ISD 사건만을 전담할 변호사도 없는 상태다. 개별 사건마다 외부 로펌을 선임하는데 특혜 시비를 피하기 위해 보통 각기 다른 로펌을 선정한다. 이렇다 보니 로펌이 경험과 내공을 쌓기도 힘들다.
ISD 책임을 정부부처 간에도 서로 떠넘기는 모양새다. 금융위 관계자는 범부처에서 아무도 이 건에 대해 보도자료를 안 낸 이유에 대해 "다야니 건만 우리 소관"이라고 말했다. 이번 건은 금액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금융위가 담당하고 (론스타를 비롯한)다른 ISD는 금액이 크고 여러 부처가 연관돼 있다 보니 법무부가 총괄한다는 설명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ISD 다른 건들은 국무조정실 관계부처협의체가 주요한 의사결정을 하고 팀원은 관계부처 차관들"이라고 말했다. 현재 채권단이 갖고 있는 계약금을 먼저 사용하기 위해 협상이 진행 중이나, 자칫하면 ‘730억원 패소’로 인해 국민 세금으로 해외 투자자에게 배상금을 지불하는 첫 사례다. ISD 패소로 국가 혈세가 낭비되는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ISD를 총괄해 전담할 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이번 판정문을 즉시 공개해 패소 이유를 명백히 규명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부터는 정부가 제대로 된 전략을 구사할 수 있고 '깜깜이식 대응'도 피할 수 있다. 이 길만이 또 다른 패소를 막는 첩경이다.

심화영 정경부 차장 doroth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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