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음원사재기는 중대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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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음원사재기는 중대 범죄다

   
입력 2020-01-08 17:51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문화평론가
최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음원사재기를 다뤄 논란이 일어났다. 사실 이 의혹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엔 음반사재기 의혹이었는데 2000년대 이후 음원시장이 커지면서 이젠 음원사재기 의혹으로 바뀌었다. 이미 2010년대 초에 음원사재기 브로커가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슈가 됐었다. 당시 음원순위 1위 가격이 1억 원이라는 이야기가 회자됐다. 요즘엔 실시간차트 50위에 천만 원, 1위에 수억대, 이런 식의 얘기가 오간다. 돈이 없을 경우엔 일단 조작한 후 수익을 나눈다고 한다.


업자들이 ID와 IP를 다량으로 구한 후, 음원차트 사이트를 해킹해 그 구조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려서, 음원 대량 구매 또는 스트리밍 반복재생으로 음원의 순위를 올리는 수법이다. 그동안은 ID 수만큼의 휴대폰을 대량으로 설치해서 돌린다고 했었는데, 이번 '그것이 알고 싶다'에선 데스크톱 컴퓨터로 가상 IP를 돌려 다수의 사람이 접속하는 것처럼 꾸밀 수 있다고 보도됐다. 휴대폰이 대량으로 설치된 중국 등의 공장에서 사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일반적인 사무실에서도 컴퓨터를 활용해 사재기와 차트조작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재기 의혹에 힘이 실리는 것은 음악산업계 관계자들이 증언하기 때문이다. 박진영 JYP 대표가 자신들에게 사재기 관련 제안이 들어온 적 있다고 했다. 이승환, 타이거JK 등 여러 뮤지션들도 같은 주장을 했다. 대형기획사들이 함께 음원사재기를 고발한 적도 있다. 하지만 검찰수사에서 증거불충분으로 유야무야됐다. 문체부가 조사한 적도 있지만, 문체부는 강제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잡아내기 힘들었다.

브로커에게 제안을 들었다고 제보해도 사재기 일당이 점조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밝혀내기 어렵다고 한다. 사재기 일당은 가수 측에서 사재기 음원차트 조작에 동의한 이후에야 제대로 접촉하는데, 그땐 가수 측이 이미 공범이 된 상황이기 때문에 고발을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음원사재기는 의혹만 무성하고 확증은 없는, 가요계 전설처럼 회자돼왔다. 작년부터 이 문제가 더욱 뜨거워진 것은 누리꾼들이 보기에 말이 안 되는 차트 상승 사례들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누리꾼 수사대라고 할 정도로 집단지성의 뛰어난 분석력이 작동하는 시대인데, 그들이 보기에 몇몇 곡의 순위 상승이 심상치 않았다. 무명 가수의 노래가 별다른 계기도 없이 갑자기 상승한다든가, 노래방이나 거리에서 불리지도 들리지도 않은 노래가 상승하는 경우, 심야 시간대에 상승하는 경우 등이다. 그런 사례들이 포착되면서 논란이 거세졌다.


'SNS 바이럴 마케팅'의 힘이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번 '그것이 알고 싶다'에선 SNS 바이럴 마케팅만으론 그렇게 극적인 순위상승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보도됐다. 결국 사재기에 의한 순위조작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니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보도에서 충격적인 건 실제 존재하는 사람의 아이디가 도용된다는 점이다. 가상의 ID로 사재기한다고 간주됐었는데, 그게 아니라 한국에 거주하는 일반인의 아이디로도 조작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일반인의 인터넷 개인정보가 대량으로 거래돼 범죄조직이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면 음악계뿐만이 아니라 인터넷 활동을 하는 온 국민이 위험에 노출된 것이어서 사안의 심각성이 커진다.

이렇게 ID를 확보하고, 가상 IP를 만들고,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려 조작하는 원리가 인터넷 세상의 모든 곳에 적용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각종 순위 산정, 맛집 홍보, 댓글 여론, 국민청원 게시판, 기업이나 정치인 평판 등에 전방위적으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 신뢰성을 떨어뜨릴 엄중한 사안이다.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이슈이기도 하다.

음원사재기 일당뿐만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해킹으로 인터넷 세상 조작을 일삼는 조직들을 발본색원해야 한다. 적용 분야는 달라도 수법이 같기 때문에 그 세계에선 서로 통하거나 상대를 알아볼 가능성이 높다. 과거 검찰수사로 잡지 못했지만 강한 의지로 수사하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음원차트 사이트 측이 마음만 먹으면 조작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란 의심도 있다. 이제라도 인터넷 조작 근절에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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