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여담] 命世之才 <명세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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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여담] 命世之才 <명세지재>

박영서 기자   pys@
입력 2020-02-13 20:14
목숨 명, 세상 세, 어조사 지, 재주 재. 한 시대를 구할 만한 뛰어난 인재(人才)를 의미한다. 서진(西晉)의 진수(陳壽·233~297)가 쓴 역사서 삼국지(三國志)의 '무제기'(武帝紀)에 나오는 말이다. 무제는 바로 조조(曹操)다. 무제기는 조조의 사적을 다룬 본기이며 삼국지의 첫 1권이다. 위(魏)나라를 창업한 조조를 교현(橋玄)은 '명세재'(命世才)라고 품평하며 이렇게 말했다. "천하는 장차 혼란에 빠질 것이다. 세상을 구할 만한 인재가 아니면 이를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다. 천하를 안정시키는 일은 아마도 그대에게 달려있을 것이다(天下將亂,非命世之才不能濟也,能安之者,其在君乎)." 교현은 조정에서 삼공(三公)을 지낸 관료였다. 무명(無名)인 조조에게 이런 평가를 내린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조조는 상국(相國)을 지낸 조참(曹參)의 후예다. 할아버지 조등(曹騰)은 환관이었고 그의 아버지 조숭(曹嵩)도 환관이었다. 조조는 어린 시절 학업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임협방탕(任俠放蕩·사내다움을 뽐내며 멋대로 노는 것)했다. 따라서 그가 나중에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교현의 이 말은 사실로 입증되었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30살의 조조는 기도위(騎都尉)에 임명되어 황건적을 토벌했다. 이 공으로 제남국(濟南國)의 상(相·지방장관)이 되었다. 이후 북방을 장악하고 있던 원소(袁紹)와 벌인 관도대전(官渡大戰)에서 예상을 뒤엎고 대승을 거둬 이름을 천하에 떨쳤다. 이후 조조는 능력 위주의 인재 등용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천하를 장악했다. 그는 '간웅'(奸雄)이 아니라 일세(一世)에 뛰어난 인재였다.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누가 명세지재의 그릇을 가지고 있는지 국민들은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개 꼬리 3년 묻어놔도 황모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제대로 된 국회의원들을 잘 뽑아야 좀 더 나은 세상이 온다는 것을 명심하자.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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