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히틀러를 위한 변명](http://contents.dt.co.kr/images/202002/2020022002152269061002[1].jpg?var=3238 "[논설실의 서가] 히틀러를 위한 변명")
A. J. P. 테일러 지음 / 페이퍼로드 펴냄
사악한 히틀러가 선동적 언사로 패전 후 절망감에 빠진 독일 국민들을 부추겨 주변 국가를 침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하지만 옥스퍼드대학 교수를 지낸 역사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전쟁의 원인을 오로지 히틀러에게만 돌리는 기존 역사가들의 견해를 뒤집는다. 카리스마 넘치는 악마 같은 미치광이 히틀러에게 2차 세계대전의 모든 책임과 원인을 돌리는 것에 반대한다. 저자에게는 히틀러는 베르사유조약의 산물이었고, 어느 정도는 동시대 유럽에 널리 퍼져있던 관념의 산물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독일의 역사와 독일의 현재의 산물이었다.
저자는 당시의 외교 기록과 히틀러의 공식 및 비공식 발언, 전후의 전범재판 기록, 전쟁 기간 내 주요국의 통계 지표를 치밀하게 인용한다. 그 결과 진실이 드러난다. 어떤 자료를 찾아봐도 독일은 당시 전쟁을 할 여력도, 생각도 없었다. 독일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히틀러에게 전권을 넘겼다. 몇몇은 전쟁을 대비하자고 했고, 몇몇은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진심으로 전쟁을 바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결국 전쟁은 일어났다. 저자는 오직 히틀러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해석이 모두에게 면죄부를 줄지는 몰라도 역사 전부를 설명하진 못한다고 반박한다. 그러면서 복잡하게 꼬인 당시 외교와 정치사의 숨은 행간을 찾아 그동안 히틀러의 뒤에 숨어 면죄부를 받던 이들을 역사라는 무대 위로 다시 끌어올린다.
1961년 초판이 나오자 미치광이 히틀러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격렬한 비난이 일었다. 저자는 나치의 부역자라는 오명을 들어야 했고, 옥스퍼드 대학에서의 강의도 접어야만 했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주류의 반대에 서서 진실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역사가의 임무는 일어났어야 하는 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밝히는 것"이라 강조한다. 그래서 이 책은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2차 세계대전의 원인에 관한 최고의 고전으로 꼽힌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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