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디지털고도화가 종신고용 파괴?

입력 2020-02-19 20:10

김인권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디지털고도화가 종신고용 파괴? — 김인권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전통적으로 일본의 고용형태를 얘기할 때 줄곧 나오는 단어가 종신고용제인데 이는 서양대비 후발공업국인 일본이 외국의 신기술을 도입하고 효율적으로 가동시킬 수 있는 노동력을 기업 내에서 키우고 발전시키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일본 기업의 중요한 특징이 되어왔으나, 그 동안 장기불황과 함께 대기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실시되면서 종신고용제가 붕괴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신용평가 대기업인 도쿄 상공리서치에서 놀랄만한 통계자료를 발표해 화제가 되고 있다.

발표된 내용의 요지는 작년 2019년도 상장회사 중 조기퇴직을 실시한 기업 수와 신청한 인원수다. 조사에 따르면 작년에 35개 상장사가 조기퇴직 모집을 실시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2018년도 12개사 대비 약 3배에 이르고, 퇴직을 신청한 직원 숫자도 약 1만1000명으로 전년의 4100명 대비 약 7000명 이상 늘어난 것이다. 과거 2013년도에 샤프, 후지쯔 등 전기전자 대기업 여러 곳들이 경영위기에 빠져서 발표했던 구조조정 수치인 1만782명을 앞질러 버린 것이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에 구조조정을 단행한 기업들 중 57%인 20개사가 꽤 많은 흑자를 낸 우량기업이었고 감축한 인원수도 전체 인원의 8할이 넘는 약 9000명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종신고용 문화를 나라 안팎으로 자랑해왔고 물리적 인원감축을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하던 일본 대기업들이 마치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처럼 매우 자연스럽게 인원을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 눈에 띄는 업종은 제약 업계다. 일본의 중외제약의 경우 2018년 순이익이 924억엔(약 1조원)으로 2년 연속 사상 최고 이익을 경신했는데도 불구하고 2019년 4월에 45세 이상의 조기 퇴직자를 모집했는데, 172명이 응모해 퇴직했고, 아스테라스 제약도 2019년 3분기 순이익이 2222억엔(약 2조3000억원)으로 전기 대비 35% 늘었음에도 조기 퇴직을 모집했으며, 그 결과 700명이 퇴직했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전자 업계다. NEC그룹의 경우 1년간 3000명의 중년 사원이 조기 퇴직했으며, 일본 후지쯔도 2850명 규모의 '중고참'들을 정리했다. 이들 업계에 공통되는 것은 AI나 빅데이터 기술혁신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AI를 이용해 신약 후보를 찾아내는 'AI 創藥(창약)'이 서양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확산 되고 있고, 전자 업계에서는 AI를 활용한 시스템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데 반해 아직도 일본 기업들의 인력구조는 4-50대 직원을 중심으로 하는 관리직의 비중이 많게는 절반을 넘는 기업들이 수두룩한 게 현실이다. 이에 심각한 위기를 감지한 제약업계와 전자업계에서는 이러한 첨단 기술을 보유한 고급 인재흡수를 위해 조기퇴직이라는 카드를 사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NEC는 AI등의 기술에 뛰어난 인재에 대해서는 신입사원이라도 연봉 1000만엔(약1억 9백만원)을 지불하고라도 확보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고, 후지쯔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인재에게 최고 4000만엔(약 4억3000만원)을 지불하겠다는 구상을 내놓고 있어서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기업입장에서 볼 때 미래인재로 보기는 힘든 40~50대 직원들을 줄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고도화와 보급이 일본 전통의 고용 관행까지 파괴한 것이다. 그나마 최근 일본의 실업률이 3%를 하회할 정도로 일손 부족이 극심해서 일자리를 떠나는 대기업 중고참들을 기다리는 구원의 손길들이 잔뜩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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