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제재권한 논란 속 발언
10년전 금융위 양보로 봉합 수순
韓銀-재무부 대립 시절도 언급
재무관료로서 색깔 드러낸 것
"(금융감독원장의 은행 임직원에 대한 제재권한은)역사의 산물이다. 방향성없이 고민해보겠다."
금융감독원장의 은행 임직원에 대한 제재권한을 놓고 금융위와 금감원이 갈등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은성수(사진) 금융위원장이 '역사'를 언급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역사'라는 단어를 통해 그만큼 깊고 오래된 금융위과 금감원의 간의 갈등을 표현했다는 게 금융권 안팎의 분석이다.
은 위원장은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금감원과 갈등이 없음을 강조해왔다. 제재권한 축소 여부에 대한 입장 표명을 자제하면서 금감원을 '파트너'로 지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은연중에 갈등의 역사를 말해 재무관료로서의 색깔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은 위원장은 지난 19일 '금융위원회 2020년 업무계획' 발표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금감원장의 은행 임직원 제재권한이 적절하냐'는 질문에 대해 "고민해보겠다. 그게 역사의 산물이다. 방향성은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에 대한 금감원장의 '문책경고' 제재 결정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도 했다. 금감원장의 은행 임직원에 대한 제재 권한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은 위원장이 언급한 금감원장 제재권한의 역사는 뉘앙스가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지난 2010년 은행법 개정안을 놓고 갈등을 빚은 바 있다. 개정안은 금감원장의 은행 임원에 대한 문책경고 이하의 제재권한을 금융위로 귀속하는 내용을 담았다. 당시 권혁세 금융위 부위원장은 국회에서 법 개정 배경을 "금융위원회라는 것을 만든 취지가 금융회사 직원의 신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검사하는 기관에서 직접 제재를 내리는 것보다 합의제기구인 위원회에 올려서 좀더 신중하게 심의를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재권한은)금감원하고 금융위하고 의견 합의를 보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권혁세 전 부위원장의 발언은 정통 재무관료의 속내를 그대로 보여준 발언이었다. 금융지주회사법, 저축은행법, 보험업법 등 다른 법령도 금융위에 제재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데 은행법만 다를 수 없다는 논리였다. 10년 전의 갈등은 금감원의 반발로 봉합됐다. 금감원은 제재권한이 없어질 경우 금감원의 위상이 위축될 것을 우려했다. 금융회사의 검사와 제재를 분리하는 것은 행정권에 속하는 문제인 만큼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는 반박도 나왔다.
사실 은행 임직원의 제재권한을 둘러싼 갈등의 역사는 한국은행과 재무부의 대립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금감원 이전 은행 임직원에 대한 제재권한은 한국은행 내 은행감독원장에게 있었다. 이에 비해 옛 증권감독원이나 옛 보험감독원 등은 옛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산하 감독기구였다.
은 위원장이 제재권한을 말하면서 역사까지 언급한 데에는 중앙은행과 재무부 간의 뿌리깊은 갈등이 숨어있다고 할 수 있다. 은 위원장은 행정고시 27회로 재무부 출신이다. 김광수 농협금융지주 회장, 윤종원 기업은행장 등이 동기다. 옛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에서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23회),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25회) 등과 함께 일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 위원장이 다른 재무관료에 비해 말투나 태도 등이 부드러운 편이지만 재무관료 특유의 치밀함은 다르지 않다"면서 "금감원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속내를 밝히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평했다.
김현동기자 citizen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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