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조작 논란에 오디션 프로 타격
두 프로그램 특유 매력으로 건재함 증명
씨름의 희열 80년대 감성 2030세대 환호
미스터 트롯 전편 이어 남다른 묘미 선사
오디션 열풍 쌍두마차 씨름의 희열·미스터 트롯
한 때 대한민국에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 불던 때가 있었다. 오디션 프로의 시초를 연 '슈퍼스타K'부터 '위대한 탄생', 'K팝 스타'까지. 아이돌이나 K팝 가수를 오디션을 통해 뽑는 게 트렌드였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오디션 조작 사건이 터졌다. 엠넷의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제작진은 전 시리즈 투표 조작을 인정했다. 자신이 응원하는 멤버에게 투표까지 한 시청자들은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오디션 프로에 대한 불신도 거세져, 유사 프로그램에 대한 비난이 계속됐다.
그러나 이러한 불신 가운데에서도 그 건재함을 증명하고 있는 두 프로그램이 있다. KBS '씨름의 희열'과 TV조선 '미스터 트롯'이다. 두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오디션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이들을 과거 오디션과 같은 형식으로 보긴 어렵다. 리얼리티를 가미한 트렌디한 오디션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씨름의 희열'은 비인기 종목인 씨름에 예능적인 요소를 가미해 풀어낸 프로그램이다. 스포츠 중계에서만 보던 씨름을 오디션 프로그램에 접목해 풀었다. 마치 오디션 무대를 보고 평가하는 것처럼 선수들의 대결을 이만기, 김성주, 붐이 분석했다. 이를 통해 씨름이 단순한 힘 대결이 아닌 다채로운 기술과 전력이 필요한 종목이며, 새로운 씨름의 기술을 하나씩 배워가는 재미를 선사했다.
씨름 선수들마다 캐릭터를 부여한 점도 인기에 한몫했다. '샅찢남(샅바를 찢는 남자)' 황찬섭, '터미네이터' 황재원, '모래판 다비드' 박정우, '황제' 임태혁, '3초 승부사' 이승호, '헐크' 김태하, '괴물' 김기수 등 각 선수 특성에 걸맞는 캐릭터를 부여해 스토리라인을 짰다. 선수들은 아이돌 못지않은 스타성을 뽐내며 프로그램의 인기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사실 '씨름의 희열' 탄생 배경은 SNS 등을 통해 훈훈한 얼굴과 다부진 몸을 가진 씨름 선수들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부터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씨름 열풍을 목격한 제작진은 모래 위 선수들의 대결을 슬로우 모션으로 정밀 중계하는 것은 물론, 마치 심사하듯 해설을 달아 박진감을 더했다.
색다른 시도는 새로운 결과를 낳았다. 할아버지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씨름에 2030 세대들이 응답했다. 각자 응원하는 씨름 선수들을 마음에 품고 이들의 대결에 응원을 보냈다. '씨름의 희열'은 지난 22일 종영했지만, 많은 골수팬들을 생성하며 새로운 시즌에 대한 가능성을 높였다.
TV조선 '미스터트롯'은 마의 고지로 여겨지던 시청률 30%를 넘겼다. 앞서 '미스트롯'의 성공을 겪은 TV조선은 열풍에 이어 또 한 번의 대박을 만들어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시청률이 이만큼 나온 것은 '미스터트롯'이 유일하다. 2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TV프로그램 1위에도 오를 정도니, 그 인기는 상상초월이다.
'미스터트롯'은 '미스트롯'의 남성버전이다. 역대 종편 예능 최고 시청률인 18.1%를 세운 '미스트롯'의 바통을 이어받아 시청률 고공행진 중이다. 물론 '미스트롯'의 후광효과도 있다. 이미 트로트 오디션의 남다른 묘미를 경험한 시청자들은 잔뜩 기대감을 안고 TV 앞에 앉았다. 하지만 종편에서 불가능하다는 시청률 30%가 나오기까진, '미스터트롯' 본연의 힘도 컸다.
'미스터트롯'의 초창기는 다소 우스꽝스러웠다. 101명의 참가자들이 빨간 수트를 입고 빨간 장미를 입에 물었다. 마치 엠넷 '프로듀스 101'을 떠오르게 하는 패션이다. 그러나 9살 트로트 신동부터 45세 최고령 참가자까지 각양각색의 참가자들이 대거 등장하자, 시청률은 치솟았다. 1만 5000명의 지원자 중 걸러진 101명이니, 이들의 실력도 어느 정도 검증된 상태였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매력을 뽐내며 시청자들을 TV 앞에 앉게 했다.
트로트라는 소재를 온 가족이 즐길 수 있게 해석한 점도 인기 요인이다. '미스터트롯'은 트로트가 50대 이상만 즐겨듣는 가요 장르가 아닌 젊은 층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도 그렇듯, '미스터트롯' 출연자들은 대부분 젊다. 이들의 감각으로 부르는 트로트는 중년층부터 젊은 층까지 폭넓게 아우르며 열풍을 일으켰다.
'씨름의 희열'과 '미스터트롯'을 보면 오디션 프로그램의 멸종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장르와 소재만 바뀔 뿐 이전부터 계속 인기를 끌고 있는 포맷처럼 보이기도 한다. 출연자를 키우는 마음으로 끝까지 지켜보게 되는 것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묘미라고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두 프로그램은 시대에 걸맞게 잘 진화했다. 앞으로도 오디션 열풍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김지은기자 sooy0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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