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兩會, 코로나에 무릎 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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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兩會, 코로나에 무릎 꿇다

박영서 기자   pys@
입력 2020-02-26 21:00

박영서 논설위원


박영서 논설위원
1949년 6월 15일 당시에는 베이핑(北平)으로 불렸던 베이징에서 23개 기관 134명이 참석한 신정치협상회의가 열렸다. 3개월 뒤 9월에 두번째 회의가 열려 명칭을 신정치협상회의에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으로 바꾸고 정부조직법 등 각종 정책들을 입안했다. 그해 10월 1일 마오쩌둥(毛澤東)은 톈안먼(天安門) 망루에 올라 특유의 후난(湖南) 사투리 억양으로 "중화런민공허궈 청리러(中華人民共和國 成立了)"라고 외치며 신중국 성립을 정식으로 선포했다.


5년 후인 1954년 9월 1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첫 회의가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온 1226명이 톈안먼광장 서쪽 끝에 있는 인민대회당에 모였다. 구성은 중국 공산당원 668명(54.5%), 민주파 및 무당파 인사 558명(45.5%)이었다. 회의에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이 제정·공포됐다. 또 마오쩌둥을 국가주석으로, 류사오치(劉少奇)를 전인대 상무위원장으로 각각 선출했다. 당시 마오쩌둥은 100% 찬성률로 주석에 당선됐다.
1954년 12월 전인대는 '정협 장정'(章程)을 가결했다. 이에따라 정협과 전인대는 중국 공산당의 공식 정치기구가 됐다. 전인대는 한국으로 치면 국회 격이고, 정협은 자문기구다. 두 정치기구는 동시에 회의를 갖는다고 해서 양회(兩會)라고 부른다.

양회는 문화대혁명 시기였던 1966년부터 1974년까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그 후의 혼란기(1975~1978년)에는 딱 한 번만 열렸다.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던 양회는 1978년 말 개혁개방 선언 이후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되어 왔다. 1985년부터는 매년 3월에 열리고 있다. 1분기에 개최하되 춘제(春節·설)와 겹치지 않는 기간을 택한 것이다. 1995년 이래로 정협은 3월 3일, 전인대는 이틀 후인 5일에 막을 올리고 있다.





매년 3월 초 베이징은 꽃샘추위가 한창이지만 정치 열기로 후끈거린다. 최대 연례 정치행사인 양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양회는 그해 정치·경제·외교의 국가목표를 제시하는 중요한 회의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연기가 결정됐다. 지난 24일 13기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13기 3차 전인대를 연기하겠다고 결의했다. 정협도 자연히 연기됐다. 이날 양회 연기안 가결 외에도 야생동물 거래 및 식용이 법으로 금지됐다.

양회 연기는 1979년 이래 처음있는 일이다. 그것도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연기됐다. 2003년 사스 당시에도 강행했던 양회였지만 코로나19 앞에서 결국 무릎을 꿇었다. 표면적으로 내건 이유는 양회 대표들이 방역작업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있어 이들이 방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연기했다는 것이다. 중앙 및 지방정부의 지도자급이 감염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을 것이다. 전인대 대표 3000여명, 정협위원 2000여명 등 총 5000명이 넘는 인원이 수도 베이징에 모여 2주 가까이 회의를 한다면 교차감염의 위험성은 당연히 크다.

경제 문제도 이번 연기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양회에선 당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나온다. 양회가 열리면 전 세계는 중국 정부가 몇%의 성장률을 제시할 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런데 코로나19가 경제에 직격탄을 날리면서 올해 성장률 목표치 추산이 어려워졌다. 당초 올해 중국경제는 6.0% 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측됐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5% 성장률도 지켜내지 못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번 양회 연기는 시진핑 정권에겐 '뼈아픈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분명히 정치적 의미는 크다. 이런 결과를 낳게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놓고 공방이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질 때로 보이는 5월말, 혹은 6월초 양회가 열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을 것 같다. 양회가 아니더라도 빠른 시간내에 비상회의를 열어 책임소재를 가리고 향후 개혁방향을 정하는 것이 중국 국민에게는 가장 바람직한 전개일 수 있을 것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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