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M DRAM 이어 16M·64M·256M 개발… 메모리반도체 경쟁력 갖춰
세계 첫 투명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로 디스플레이 강국 입증
자율주행車·IoT 기기 등 산업 규모 확대… 글로벌 주도권 경쟁 치열
ETRI 제공
경제종합일간지 재창간 1년ㆍ창간 20년
AI반도체 시대 연다
반도체 연구 산실 ETRI
대전 유성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4연구동 반도체 실험실 앞. 실험실 입구 옆 커다란 디스플레이 화면에 소속별 연구자 이름이 표시돼 있다. 현재 실험실에 있는 연구자의 출입 현황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화합물반도체와 실리콘반도체 관련 실험을 할 수 있는 넓직한 공간에 각종 반도체 장비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 장비는 반도체 실험에 필수적인 고가의 핵심 장비들로, 세월의 흔적을 머금고 있었지만, 반도체를 연구하는 ETRI 연구자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보배와 같은 존재다. ETRI 반도체 연구의 과거, 현재, 미래가 이들 장비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싶다.
# 국내 반도체 역사의 산실 'ETRI 실험실'
1988년 문을 연 ETRI 반도체 실험실 면적은 1514㎡(1750평)로, 4연구동과 2연구동에 자리잡고 있다. 3411㎡(973평) 규모의 클래스(class) 10∼1만에 해당하는 '청정실험실'과 '4인치 공정 화합물·광소자 실험실', '6인치 공정 실리콘·MEMS(멤스) 실험실', '물성분석 및 패키징 실험실' 등을 갖추고 있다. 또한 OLED, 광 디바이스, 태양전지, 테라헤르츠 등 각종 반도체 소자 실험을 위한 '첨단 연구실험실' 등도 마련돼 있다.
이 곳은 ETRI의 '반도체 연구 산실'에 앞서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의 성지(聖地)이자, 반도체 강국 코리아 명성을 쌓은 상징과도 같다.
박종문 ETRI 반도체융합부품연구실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 반도체 원천 핵심기술이 'ETRI 반도체 실험실'에서 탄생했고, 국내 산업체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 반도체 산업 발전에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4M DRAM' 등이 개발된 곳"이라며 "이 곳에서 창출된 경제적 파급효과만 63조 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ETRI 반도체 실험실은 개소 이듬해인 1989년부터 4M DRAM를 시작으로 16M·64M·256M 등 '초고집적 반도체 공동개발사업'의 잇단 성공에 기여하며 이 땅에 본격적인 반도체 씨앗을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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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M DRAM 필두로 '메모리반도체 강국' 초석
4M DRAM은 ETRI가 연구개발을 총괄하고, 삼성반도체통신, 금성반도체, 현대전자,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등 산학연이 공동 참여해 1986년부터 1989년까지 2년 5개월에 걸쳐 총 879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한 당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국가 연구 프로젝트였다. 각 산업체별 개발 목표 설정을 통한 경쟁 체제 도입과 연구자들의 사활을 건 노력에 힘입어 예정보다 한 달 빠른 1989년 2월 개발에 성공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에 이어 초고집적 반도체 제조기술을 확보한 나라가 됐다.
4M 개발으로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ETRI는 1989년부터 1993년까지 4년 간 차세대 반도체 기술인 16M·64M DRAM 개발에 연이어 성공했으며, 256M까지 확장함으로써, 오늘날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는 토대를 다졌다. 메모리 반도체 개발과 함께 비메모리 반도체인 주문형 반도체 개발에도 나서 기업이 원하는 반도체 설계부터 소자 개발까지 일괄 공정으로 지원하며, 매년 50개 이상 기업에 2000건의 기술지원을 통해 세계 최고의 반도체 산업 생태계 조성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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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초·세계 최고 반도체 기술 집약소
반도체 실험실은 1991년 국내 최초의 화합물 전용 실험실을 구축하고, 화합물 반도체 분야 연구에 주력한 결과, 1994년 국내 최초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개발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를 기반으로 국내 기업들이 OLED 산업의 혁신을 주도하며 세계 선두 주자로 기술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이듬해인 1995년 CDMA 단말기용 아날로그 주문형반도체(ASIC) 개발과 1998년 휴대단말기용 송·수신칩, 광통신용 칩, 광송수신 모듈 등을 잇따라 내놓으며 반도체 분야의 새 영역 개척에 나섰다. 2000년대 들어 화합물반도체 실험실을 업그레이드해 반투명 태양전지(2003년)와 지상파 DMB 수신 시스템온칩(SoC, 2005년)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최근에는 세계 최초 투명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원천 핵심기술 확보를 통해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센서, 디지털 엑스선 튜브, 인공지능 프로세서 등 지금까지 반도체 기술 혁신을 가져온 핵심 연구 인프라로 당당히 자리잡아 가고 있다. 국내 최고의 반도체 설계 대전에서 5번에 걸쳐 대상을 배출하기도 했다.
# AI 반도체 등으로 미래 준비
정부는 시스템반도체를 3대 중점 신산업으로 정해 미래 반도체 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빅데이터, AI(인공지능) 등의 기술과 수요 급증으로 반도체 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모바일 기기와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기기, 로봇 등의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모바일 메모리, 모뎀 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 다양한 반도체 수요가 큰 폭으로 늘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AI 반도체가 반도체 산업에 거센 혁신의 폭풍을 가져올 것이다. 과거 PC 시대에 인텔의 CPU, 스마트폰 시대엔 퀄컴의 AP가 각각 기술 독점을 통해 막강한 영향력 행사했듯이, AI 반도체 기술 주도권을 잡기 위한 한국, 미국, 일본, 중국 간 치열한 기술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중심의 불균형적 반도체 산업구조를 극복하고, 새로운 반도체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부터 2030년까지 총 1조 원을 투자해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개발사업에 착수했다. 저전력·고성능 미래 소자와 연산 속도 향상을 위한 설계 기술, 미세화 한계를 극복하는 원자단위 공정·장비 등을 개발해 세계 1위 지능형 반도체 국가 반열에 올라서겠다는 야심찬 출발을 선언했다.
김명준 ETRI 원장은 "AI 반도체는 아직 압도적인 강자가 없는 산업 초기 단계인 만큼 한 발 앞서 핵심 기술을 확보하면 세계 반도체 시장을 리드할 수 있다"며 "정부의 선도적 투자와 출연연, 산업체 등의 개발 역량을 결집하면 'AI 반도체 1등 국가'로 하루빨리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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