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쿠오모 형제 `설전의 품격`

입력 2020-03-30 18:24

김광태 글로벌뉴스팀장

형제는 용감했다. 그래도 돼나 싶었다. 제 아무리 피와 살을 나눈 형제라 해도 생방송 인터뷰 도중 시시콜콜 사담(私談)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는게 말이다. 웬만한 간을 가슴 속에 달고 있지 않은 한. 게다가 그것이 사느냐 죽느냐 전쟁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그런데도 사람들의 반응이 뜨겁다. 이 유별난 형제의 여유와 위트 있는 말 한 마디에 적잖은 이들이 위로와 감동을 발견해서다.

공포와 불안감으로 잔뜩 웅크리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는 형제들. 그들은 바로 앤드루 쿠오모(63) 뉴욕주지사와 크리스토퍼 쿠오모(50) CNN 앵커다. 이들의 '생방송 티격태격 설전(舌戰)'이 유튜브에서 때아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웃음을 지을만한 한가한 때가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세계 1위다. 1월 21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약 두 달 만에 발병의 근원지인 중국을 제쳐 버렸다. 실업쇼크는 현실화되고 있다. 하루 아침에 해고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지난주에만 328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불안감은 들불처럼 확산하면서 미국 사회에 '패닉 구매'를 불러일으켰다. 그 심리는 묘해 '묻지마 화장지'에 '묻지마 총기' 구매까지 이어지고 있다. 왜 사는지, 왜 필요한지도 따지지 않는다.

이런 코로나 사태 때문에 쿠오모 형제의 희극적 설전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이들의 앙증맞은 유머 코드가 방송을 타며 국민적 힐링으로 떠오른 것이다. 특히 뉴욕주가 미국 내에서 확진자가 가장 많은 주(州)라는 점에서 쿠오모 주지사에게 쏠린 주목은 다소 이례적이기도 하다.

이들 형제부터 소개해보자. 뉴욕주지사 앤드루 쿠오모는 큰 형, CNN 앵커인 크리스토퍼 쿠오모는 다섯째 동생이다. 작고한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 아버지 마리오 쿠오모(1932~2015)는 민주당 소속으로 1980~90년대 미국 뉴욕주 주지사를 세 차례 역임했다.

마리오는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뉴욕 주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는 민주당으로부터 두 차례나 대선 주자로 출마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출마 여부를 놓고 장고를 거듭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과단성 없는 행동 탓에 '허드슨강의 햄릿'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쿠오모 가문은 미국 내에서 케네디·부시 가문 등과 함께 정치 명문가로 꼽힌다.

앤드루는 아버지 마리오와 어머니 마틸다와의 사이에 태어난 장남이다. 형제는 5명. 앤드루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빌 클린턴 정부의 주택 및 도시개발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그러다 2011년 뉴욕 주지사에 당선됐다. 2015년 재선에 성공해 두번째 임기 중에 있다.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의 딸이자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조카딸인 케리 케네디와 결혼해 화제를 모았지만 2003년 이혼했다.

막내 크리스토퍼 쿠오모 CNN 앵커는 뉴스쇼 '쿠오모 프라임 타임'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큰 형과 막내 사이에는 세 명의 여자 형제가 있는데 영화 프로듀서, 방사선과 전문의 그리고 변호사다. 이 잘나가는 큰 형과 막내 동생이 얼마전 CNN방송의 '쿠오모 프라임 타임'에서 설전을 벌였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동생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뉴욕주의 코로나19 대응 상황을 설명하러 나온 자리였다.

두 차례 방송에서 코로나 관련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다가 엉뚱하게 이들의 부모가 이야기 소재로 등장했다. "엄마가 방송에 나가라고 해서 나왔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너는 나처럼 성장할 것이다", "아빠가 형 손이 바나나 같다더라" 등 사적대화가 여과없이 방송을 탔다.

일부에선 이런 대화가 코로나 전쟁터에서 방송용으로 적절하느냐는 지적도 나왔지만 시청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하지만 이들이 의도를 했든 안했든 시민들에게 적잖은 위로를 줬다. 이들에게 '홀딱 반했다'는 트위터 글로 가득 찬 예기치 못한 온라인 팬클럽도 생겨날 정도였다.

덕분에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의 주가도 치솟고 있다. 벌써 민주당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코로나 위기 앞에 불편한 팩트(사실)를 솔직히 전달하고 인기가 없어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쿠오모의 결단력에서 미국인들이 위안을 찾는다. 항간엔 쿠오모 주지사가 "트럼프 대통령보다 더 미국 대통령같다"라는 말까지 떠돈다.

쿠오모 형제를 내세워 코미디 정규 프로그램까지 만들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이 형제의 유머와 해학코드가 미국사회를 강타하는 '코로나 광기'를 잠시나마 식혀주는 것 같다.

김광태 글로벌뉴스팀장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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