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김양혁 기자]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지수가 8개월 만에 역성장하면서 '디플레이션'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는 역성장의 주원인으로 석유 가격을 지목하며 단기적 상황이라고 일축했지만,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 데다 미·중 무역분쟁까지 겹치면 한층 더 고조된 불확실성에 우려하고 있다.
2일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4.71(2015년 100 기준)로 작년 같은 달보다 0.3% 떨어졌다. 작년 9월(-0.4%) 이후 8개월 만에 마이너스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올 들어 3월까지 1%대를 유지해왔다. 이후 4월 0.1%로 0%대에 진입한 이후 지난달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지난 4월 상승률을 꺾었던 것은 코로나19 영향과 함께 정부가 내수 경기 진작을 위해 시행 중인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 등 공업제품 하락 영향이 컸다.
이달 소비자 물가 상승률 역성장을 이끌었던 것은 석유류 가격이다. 공업제품이 2% 하락했는데, 특히 여기에 포함된 석유류 가격은 18.7% 급락하며 전체 물가를 0.82%p(포인트) 끌어내렸다.
예고된 결과나 다름없다. 지난 3월 두바이유 가격은 전달보다 50% 이상 떨어진 데 이어 4월 역시 30% 가까이 추락했다. 안형준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국제유가는)통상 4주 정도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에 반영된다고 보고 있다"며 "다음 달 반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 정책도 소비자물가지수 감소를 부추기는데 한몫했다. 고등학교 3학년에 혜택을 주던 무상 납입금이 지난 4월부터 2학년까지 확대됐다. 그 결과 공공서비스는 1.9% 줄었고, 공공서비스를 구성하는 고등학교 납입금 하락 폭은 66.2%에 달했다. 고등학교 1학년의 납입금까지 무상으로 하는 방안을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함에 따라 소비자물가 하방 압력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코로나19로부터 시작된 장기적 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은 디플레이션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곧 기업 수익 감소와 생산 위축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이날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물가하락에 대한 막연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소비와 투자가 지연되고 성장세 둔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발생되지 않도록 정책적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우려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직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은 데다 미국 내 진행 중인 폭동에 미·중 무역분쟁까지 겹치며 불확실성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며 "두고 봐야겠지만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안 심의관은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발생하는 수요 부족에 의해 물가가 낮아지는 현상이 지속됐을 때 디플레이션이라고 정의하지만, 이번에는 수요 측 원인이라기보다는 공급 요인"이라며 "디플레이션이라고 판단하기는 부적절하다"고 선을 그었다.김양혁기자 mj@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