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관계 대립안건 심의도 못해
논의보다 실증에 속도 붙여야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논의 보다 실증사업에 속도를 붙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법적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 신청 안건이 임시허가나 실증특례 등을 통해 안전성 검증을 받기까지 최소 1년 이상의 기간이 걸리고, 공유차서비스 '타다'처럼 이해 관계자 간 첨예한 대립이 있는 안건은 대부분 법령 개정 문턱에서 좌초되는 사례가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1월 17일 ICT융합, 산업융합 분야를 시작으로 금융분야, 지역특구 분야 등으로 넓혀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시행, 운영하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는 혁신적 신기술과 신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일정 조건 하에서 규제를 유예 또는 면제하는 제도로, 관련 기술과 서비스의 시장 출시를 우선 지원한다. 임시허가나 실증특례 등을 통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면, 규제 신청기업과 관련 기업 모두 규제에 상관없이 신기술과 신서비스 상용화가 가능하도록 법령 개정을 통해 규제개선이 이뤄진다.
업계에서는 우선, 규제 샌드박스 사업이 과기정통부, 산업부, 금융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 등 각 부처별로 나눠져 있어 관련 규제를 신청·문의하는 첫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는다고 토로한다. 새로운 혁신기술과 새로운 서비스들은 통상적으로 각 분야와 기술을 융복합한 형태로 나오기 때문에 특정 규제가 어떤 분야에 해당하는 지를 일일이 파악·문의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을 뺏길 수 밖에 없다.
특히 타다와 같이 이해 관계자의 첨예한 대립과 반대가 예상되는 안건이거나, 암호화폐 등 정부 방침이 정해지지 않은 경우에는 심의 과정에서 대부분 보류되거나, 제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1월 ICT(정보통신기술) 분야 규제 샌드박스 1호로 신청된 '블록체인 기반의 해외 송금 서비스'는 안건 심사에 상정되지도 못했다 겨우 안건으로 재상정된 이후 심의 과정에서 보류된 채 아직까지 심의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비대면 진료' 역시 정부 부처 간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해 결국 내국인은 빠진 채 재외 국민만을 대상으로 심의를 통과하는 등 '반쪽짜리 규제 샌드박스'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아예 심의에 불참하기도 했다.
DTC(소비자직접의뢰 유전자검사) 사업과 같이, 규제특례 안건으로 지정됐더라도 실증사업 착수까지 준비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도 큰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중기부 규제자유특구의 경우 규제안건으로 지정된 후 실증사업을 수행하는 데 거의 1년 가까운 기간이 소요되는 등 실증에 앞서 관련 절차를 밟는 데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중기부의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대전 바이오 메디컬' 관련 실증사업은 지정된 지 1년 만에 착수할 수 있었고, 강원도 역시 지난해 7월 규제자유특구 지정 이후 근 1년이 다 된 지난 5월에야 '디지털 헬스케어' 실증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이전에 없는 기술과 서비스를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실증한다는 점에서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해 보험업계가 보험 가입을 꺼리기는 사례도 생겨 실증 착수까지 어려운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업계는 기업들이 규제 샌드박스 사업을 통해 특례기술과 신서비스가 보다 빠르게 시장에 출시될 수 있도록, 정부가 규제신청 부터 법령개정 등 제도개선 전 주기를 최대한 앞당겨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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