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싹쓰리, 복고의 정점에 서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008/2020080502102269660002[1].jpg?var=0958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싹쓰리, 복고의 정점에 서다")
이들은 90년대에 데뷔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90년대풍 혼성그룹을 결성해 90년대풍 여름 댄스음악을 선보인다는 기획인데, 여기에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가히 90년대 복고 현상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싹쓰리 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서 복고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단순히 기성세대가 과거를 추억하는 차원이 아니라, 젊은 세대가 새롭게 가세해 자신들의 감각을 더한다는 점에서 '뉴트로(New-tro)'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대표적인 뉴트로 현상이 바로 '인터넷 탑골' 현상이었다. 방송사들이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 사이에 방영됐던 쇼프로그램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거기에 열광적인 반응이 나타난 사건이다. 과거 트렌드를 즐기는 인터넷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과거의 풍물을 찾아볼 수 있는 서울 종로 탑골 공원을 빗대 인터넷 탑골이라고 한 것이다. 그 현상의 주역이 바로 젊은 세대였다.
과거의 풍물을 찾아볼 수 있는 또다른 공간인 서울 동묘 주변의 분위기도 최근 바뀌었다. 원래 동묘 주변에선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뉴트로 열풍 속에서 동묘도 '힙'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거리에서 중고품을 고르는 젊은이들이 많아졌고, 그런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새롭게 꾸민 업장들도 나타났다. 을지로처럼 과거의 정취가 남아있는 골목에 관심이 쏠리기도 한다.
이런 뉴트로 탑골 스타일의 핵심이 바로 90년대다. 너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젊은 세대 입장에선 낯설 수 있다. 그에 비해 90년대는 과거의 정취를 느끼게 하면서도 과도한 이질감까지는 넘어가지 않는 친밀성이 있다. 먼 과거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접점에 90년대가 있는 것이다. 7080 카페가 생겨도 젊은 세대가 많이 찾지 않았었는데 90년대 감성주점엔 젊은 세대가 줄을 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놀면 뭐하니'는 바로 그런 90년대를 콕 찍었다. 90년대엔 룰라, 잼, 철이와 미애, 쿨, 코요테, 영턱스클럽, 유피 등 수많은 혼성그룹이 활약했지만 지금은 맥이 끊어졌다. 당시엔 여름에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국민 댄스음악이 나오곤 했었는데 이젠 그런 분위기도 사라졌다. 이때 혼성댄스그룹 싹쓰리가 쉬운 댄스음악을 들고 찾아온 것이다. 프로그램은 방영 도중에 듀스, 쿨, 서태지와 아이들, 핑클 등의 90년대 자료화면을 수시로 틀어 시청자를 그 시절로 인도하기도 했다. 그러자 싹쓰리가 90년대 복고 신드롬의 정점에 선 것이다.
90년대는 한강의 기적이 일단락된 풍요의 시기였고, 민주화가 이룩된 자유의 시기였다. 자신감과 개방적인 분위기가 흘러 넘쳤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90년대 말에 외환위기가 터졌고 2000년대부터는 3포 세대, 5포 세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울한 분위기로 반전됐다. 90년대까지 남아있었던 공동체 문화도 2000년대엔 많이 사라져 파편화되고 삭막한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90년대가 매력적이다. 잠시나마 그 시절을 돌이키며 아련한 온기를 느끼는 것이다.
90년대는 또, 대중문화 르네상스 시기였다. 지금 한국 대중음악을 주도하는 아이돌 댄스음악이 그때 나왔다. 랩, 힙합, 리듬 앤 블루스, 테크노 등 요즘 트렌드의 출발점도 90년대다. 그래서 90년대 콘텐츠에 이질감이 없다. 이질감이 없지만 적당히 낯설기도 한데 그 부분이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요즘 한국 대중음악이 지나치게 서구화하면서 우리 감성을 온전히 채워주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싹쓰리는 쉬운 멜로디, 서정적인 가사의 90년대 스타일 댄스음악을 제시했다. 기성세대에겐 추억이지만 젊은 세대에겐 요즘 보기 드문 새로운 감성이었다. 그래서 더욱 '핫'해졌다.
여기에 유재석, 이효리, 비의 스타성이 더해졌다. 유재석은 이미 공인된 최고의 예능인이고, 이효리는 '놀면 뭐하니'에서 물 만난 듯 신들린 예능감을 선보였다. 비는 '깡' 신드롬을 일으키며 화제성을 견인했다. 이런 멤버들이 90년대 감성을 신선하게 표현하자 올 여름을 싹쓸이하며 90년대 복고의 정점에 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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