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협의 의지 밝혔지만 처리 가능성
집중투표제, 주주간 파벌 등 부작용
감사위원 분리선임, 이중규제 지적
다중대표소송, 부당 경영개입 빌미
[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재계가 오는 18일부터 시작하는 8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정부여당의 소위 '반기업법' 강행 처리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맞아 어려운 업계에 규제 발목잡기까지 더해질 경우 '기업 못 할 나라'가 될까 우려하고 있다.
10일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에 따르면 정부여당이 지난 6월 소위 '경제민주화법'으로 부르는 기업 지배구조 관련 규제 강화 법안을 다수 발의함에 따라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동산 관련 법안 처리 이후 주요 입법 과제로 집단소송제 등 상법 개정안을 꼽았다. 다만 부동산 관련 법안을 강행 처리한 여당이 야당과의 협의 의지를 내비치고 있어 아직 강행 처리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럼에도 재계는 정부여당의 반기업법 처리 의지가 단호한 만큼 국회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재계에서 '반기업법'으로 꼽는 법안으로는 상법개정안, 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 통합감독 규제 강화 등 크게 4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상법개정안에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임,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집중투표제의 경우 주주총회에서 2인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한 주에 1표만 주지 않고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집중투표제로 이사 3명을 뽑을 때 한 주를 가진 주주는 3표를 행사할 수 있어 소위 '몰아주기'가 가능하다. 소수주주의 권한이 세지면서 오너·대주주를 견제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집중투표제를 의무화 한 곳은 러시아, 칠레, 멕시코 등 3개국 뿐이다. 미국은 1950년대, 일본은 1970년대에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폐지했다. 주주 간 파벌싸움과 경영 효율성 훼손 등의 부작용에 따른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 제도가 기업사냥꾼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주주 간 파벌싸움 등으로 악용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현대자동차를 공격했을 당시 이 제도를 활용해 자기편 이사를 심어놓고 경영권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임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감사위원 중 1명 이상을 이사 선출단계에서부터 다른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도록 하는 것으로,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 합산 3%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해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이 제도의 근간이다. 기존에는 이미 선출된 이사회에서 감사위원을 선임했다.
다만 문제는 이 역시 엘리엇 같은 기업 사냥꾼과 우호세력이 연합해 감사위원을 추천할 경우 기업을 흔들고 또 기밀정보를 유출할 수 있는 위험이 커진다. 일반 주주도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긴 했지만, 대한항공 경영권에 도전한 3자 연합처럼 여러 주주들이 연합할 경우 사실상 제한 없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서다. 재계에서는 이미 이사진 선출 단계에서 최대주주의 3% 의결권 제한이 있는 만큼, 이 같은 제도를 시행하면 이중규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중대표소송도 마찬가지로 기업에 엄청난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반기업법'으로 꼽힌다. 자회사 이사가 자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모회사 주주가 해당 이사를 상대로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것으로, 이 경우 지주사 주주들이 자회사의 경영에 부당한 개입을 할 수 있는 빌미를 준다.
결국 자회사가 이사회 결정을 거쳐 의사결정을 해도 모회사 주주가 소송을 제기해 제동을 걸 수 있게 되고, 자회사의 경영 독립성은 크게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이 제도 역시 대다수 국가들이 도입하지 않고 있고, 미국과 일본의 경우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엄격하게 적용하는 수준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만약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될 경우, 지난 4월 기준 상법상 국내 자회사(지분율 50% 이상)를 가진 상장사 1114개에 이들 기업의 자회사 3250개까지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상장사·자회사가 피소될 가능성이 현재의 약 4배로 커진다는 결론이다.
재계에서는 이 밖에도 자산 5조원 이상의 금융산업 복합그룹에 대해 비금융 부문과 금융부문 간 출자 제한 등을 담은 금융그룹 통합감독 규제, 기업 간 협력이익에 대해 일정 비율의 공유 의무화 등을 담은 협력이익 공유제 등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
경총 관계자는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와 투명경영 관련 법제도는 글로벌 수준에 접근한 반면, 딱히 외국 자본의 공세에서 경영권을 지킬 만한 방어수단은 취약한 상황"이라며 "이 와중에 오히려 경영을 더 어렵게 만드는 제도가 만들어질 경우 경제회복은 더 더뎌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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