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애 칼럼] 질병관리청, 한국의료 판을 뒤집어라

안경애기자 ┗ "언어 특화된 데이터 플랫폼 키워 기계, 사람처럼 말하는 시대 열것"

메뉴열기 검색열기

[안경애 칼럼] 질병관리청, 한국의료 판을 뒤집어라

안경애 기자   naturean@
입력 2020-09-13 19:11

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안경애 칼럼] 질병관리청, 한국의료 판을 뒤집어라
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코로나19를 비롯한 감염병과의 전쟁을 이끌 전투사령 조직 질병관리청이 12일 출범했다. 지난 몇 달간 기관 존재 가치를 확실히 보여주며 본부에서 격상 출범한 질병관리청에 응원을 보낸다. 기관 역할과 예산 확대, 정부 내 위상 강화와 협업체계 구축까지 과제가 산적해 있다. 질병관리청이 이왕 전투를 치르는 조직이라면, 감염병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상대와 싸워 줬으면 한다. 바로 경험과 단절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대한민국 의료를 데이터와 연결해 시대에 맞게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또 의료서비스의 고객이자 건강권·생명권의 주체인 국민 중심으로 의료체계를 되돌려 놓는 것이다.


제조부터 금융, 서비스에 이르는 모든 산업이 급변하는 시대에 의료가 언제까지나 예외로 있을 수는 없다. 생명과 뇌의 세계는 미지의 영역이 아직 많지만 그동안 인류가 쌓은 지혜와 데이터에 인공지능, 디지털 기기 등을 결합하면 더 효과적으로 밝혀낼 수 있다. 특히 규제와 단절로 인해 서로 연결되지 못 하던 정보들을 모으면 질병 예방·치료·환자관리 수준을 당장 높일 수 있다.
질병관리청은 이미 그런 도전을 통해 코로나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경험이 있다. 개인 위치정보 관리부터 진단키트 신속 허가, 드라이브 스루 검사, 모바일앱·SNS 등을 활용한 대국민 소통까지 과거의 관행을 깬 시도의 결과다. 다음 할 일은 데이터와 연결의 힘을 더 키우고, 더 넓은 영역에 적용하는 것이다. 데이터와 기술혁신의 에너지가 가장 폭발적으로 발휘될 영역이 의료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국가가 질병관리청에 부여한 미션은 '과학적 근거 기반의 국가 공중보건 및 보건의료R&D 중추기관'이다. 감염병 대응 뿐 아니라 만성질환 대응과 질병 대비 보건의료 R&D도 역할로 규정돼 있다.



이미 현장에서는 숨가쁜 변화가 시작됐다. 구글·애플·MS·아마존 등 글로벌 기술기업들은 IT산업에서 만들어낸 플랫폼 파워를 의료 분야로 확장하기 위해 기술투자와 인수합병, 의료기관과의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로 개인이 어디에 있든 건강과 질병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유전자 분석결과와 생활패턴, 식생활 정보까지 종합해 개인맞춤 건강관리와 질병 예방·치료·관리를 하는 정밀의료가 최종 지향점이다. 데이터 기업들이 축적한 개인 건강·질병·유전자 정보는 제약·의료기기·의료서비스 기관들이 거액에 사 간다. 국내 주요 병원들도 각종 진단·진료·유전자 데이터를 결합해 맞춤 서비스를 하기 위한 투자를 하고 있다. 여기에다 병원의 공간구조를 환자 중심으로 바꾸고, 비접촉 워킹스루 진단, 로봇 이용 공간방역, 모바일앱을 활용한 동선안내부터 전자처방전를 통해 감염병 저항력 높이기에 힘쓰고 있다. 이런 시도가 폭발력을 가지고, 의료산업의 '상전이'로 이어지려면 겹겹 규제, 병원의 높은 문턱, 의료집단간의 이해관계, 의료와 타 산업과의 단절을 극복하는 파괴와 연결이 필요하다. 팬데믹 상황에 출범한 질병관리청이 적임자다. 코로나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라도 의료체계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감염병을 뛰어넘어 국민 건강과 질병대응을 위한 전 영역에서 질병관리청이 '메기' 역할을 하길 희망한다. 핀테크가 금융산업의 오랜 관행과 역학구도를 바꾸면서 전통적 금융사들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처럼, 질병관리청이 변화의 '방아쇠'가 되길 바란다. 코로나 상황에서 규제완화를 통해 위기대응 능력을 키웠듯이, 질병관리청은 정부 내 '규제클린기관' 또는 '규제샌드박스기관'으로 자리매김했으면 한다. 최소한의 규제 또는 '제로 규제' 위에서 국민 건강을 위한 혁신과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 국민 생활과 문화, 도시 공간, 산업현장까지 사회 전체의 감염병 대응력을 높이는 일도 주도해야 할 것이다.
패색이 짙었던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승리한 것은 반대를 무릅쓴 기술혁신 투자 덕분이었다. 버니바 부시 MIT 교수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지 하에 연방정부 내에 새로운 과학자그룹을 만들어 전쟁에 이기는 기술 개발을 지휘했다. 군은 소수의 과학자가 군의 예산과 역할을 빼앗아 간다며 격렬히 반대했지만 당시 개발한 레이더 덕분에 속수무책이던 독일 잠수함 추적이 가능해져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질병관리청이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K방역에 이은 미래형 K의료 모델을 완성하는 담대한 변화를 이뤄내길 응원한다.

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naturean@dt.co.kr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