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그땐 그랬지" 추석풍경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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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그땐 그랬지" 추석풍경 변천사

   
입력 2020-10-06 19:02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그땐 그랬지" 추석풍경 변천사
하재근 문화평론가
한국은 세계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루어냈다. 경제가 발전했다는 건 국민들의 살림살이, 우리 공동체 삶의 수준이 급격히 변화했다는 뜻이다.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그런 변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1960년대에는 지금처럼 서울 인구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부족한 교통 인프라는 그런 정도의 인구 이동조차도 감당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70년에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후에도 명절 도로 병목 사태는 이어졌다. 승용차가 어느 정도 증가하자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는 데 14시간이 소요되기도 했다. 생리현상 해결이 절박한 당면과제였다. 명절이 끝나면 도로변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철도편도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다. 열차의 속력도 느렸다. 그 결과 추석 때 대중교통 안 풍경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차 콩나물시루 같다는 말까지 나왔다. 기차에선 입석으로도 모자라 심지어 짐칸에 사람들이 포개어 누워가기도 했다. 열차가 급정거라도 하면 대형참사가 터질 수 있는 위험한 환경이었다. 사고가 안 난다고 해도 장시간 불편한 자세로 열차에 '실려' 가는 것 자체가 건강을 위협할 정도의 고역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명절만 되면 기꺼이 고향으로 향했다. 서울역 앞에선 표를 구하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표 한 장을 사기 위해 신문지를 깔고 길거리에서 꼬박 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 고생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고향에 간다는 설렘에 저마다 상기된 표정이었다. 손에는 으레 도시에서 구입한 선물 보따리가 들려있었다. 1950년대까지는 아직 이렇다 하게 상품화된 선물이 없었지만, 1960년대가 되자 설탕, 밀가루, 조미료 등 '3백' 선물 세트가 나타나 인기를 누렸다. 제일제당은 이 당시 추석맞이 선물용 설탕을 광고하며 '당분 99.9% 보증'을 내세웠다. 일부러 당도가 떨어지는 비정제 설탕을 찾는 요즘엔 상상하기 어려운 세태다.

1970년대에도 500~1600원 정도 가격의 미원, 미풍 조미료 세트, 설탕 등의 인기가 계속 됐다. 거기에 경제개발의 성과를 반영하는 경공업 제품도 부각됐다. 신발, 양말 등이 대표적이다. 어린이들의 로망이었던 과자종합선물세트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 1980년대는 후진국에서 벗어났다는 자기인식을 갖게 된 시기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리기 시작했다. 갈비세트, 정육세트, 고급 술 선물세트까지 등장했다. 명절 과소비, 백화점 선물세트 고급화 등이 사회문제로 비화했다. 유명연예인들이 추석 선물세트 광고에 나서기 시작했다. 커피 같은 기호 식품, 참치캔 등도 주요 상품군에 진입했다.


1990년대는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극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외환위기 후엔 비누세트 등 저렴한 선물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선물 고급화, 다변화가 다시 시작했고 특히 요즘엔 건강 관련 제품들이 인기다. 생존 필수품에서 100세 시대 웰빙 용품으로 바뀐 것이다. 반려동물 전성시대를 맞아 사료 및 간식 등 동물 관련 상품이 사람용 상품 이상으로 각광받기도 한다. 보릿고개 때 밀가루, 설탕에 의지해 겨우 연명하던 시절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젠 동물 먹는 간식 선물에 돈 쓰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 추석을 지키는 영화도 바뀌었다. 1979년 '취권' 이래 한국 추석 극장가를 지킨 배우는 바로 성룡이었다. PC방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에 사촌들이 모이면 영화 관람이 최고의 오락이었다. 그 오락을 홍콩 배우 성룡이 책임진 것이다. '용소야', '프로젝트A', '폴리스 스토리', '용형호제' 등 수많은 성룡 출연작이 추석 극장가를 장악했는데, 이 영화들이 나중엔 명절 특선 명화로 편성돼 TV 방영됐기 때문에 우리 국민이 명절에 성룡을 쳐다보며 시간 보내는 세월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이젠 우리 추석 극장가를 한국 영화가 탈환했다. 요즘은 추석 시즌에 외국 영화가 흥행을 주도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고, TV 추석 특선 영화도 한국 영화가 우선이다.

이 모든 현상이 급격한 발전의 결과물이다. 도로망이 확충되고 KTX 고속철도가 개통되자 이동시간이 대폭 줄면서 콩나물시루 같은 밀집 승객도 사라졌다. 온라인 예매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매표창구 앞에서 밤을 새지도 않는다. 물자가 풍부해지고 구매력이 상승했기 때문에 이젠 생필품, 기본 식료품 세트를 소중하게 들고 가며 설레지도 않는다. 경제성장은 영화산업도 발달시켰다. 기적적인 성공의 역사가 짧은 시간에 명절 풍속도를 완전히 일신시켰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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