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함 칼럼] 바이러스에 감염된 미국 대선

메뉴열기 검색열기

[양승함 칼럼] 바이러스에 감염된 미국 대선

   
입력 2020-10-12 18:43

양승함 前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양승함 칼럼] 바이러스에 감염된 미국 대선
양승함 前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바이러스에 감염된미국 대선 前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음으로써 11월 3일의 미국 대통령 선거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됐다. 여론조사에서는 대체로 트럼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열세인 것으로 나타났으나 선거 판세는 막중한 혼전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사태는 미 대선 과정 자체를 혼미에 빠뜨릴 가능성이 있을지언정 그 결과는 바이든 후보의 승리를 보다 확실하게 해주고 있다.
일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빠르게 회복해 건강하게 선거운동에 복귀한다면 동정표를 획득해 대세를 역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감염에서 회복한 뒤에 지지도가 올라갔듯이 말이다. 그런데 존슨 총리의 경우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투병한 후에 자신이 코로나바이러스를 경시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방역 조치를 강화했기 때문이었다. 트럼프의 경우는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우선 트럼프의 감염은 이미 충분히 예상된 사건이었다. 그동안 트럼프는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감기 수준으로 저평가하고 정부 의료전문가들의 조언을 비웃으며 경제회복을 위해 공중방역을 등한시했다. 마치 백신이 대선 전에 등장해 세계적 대유행을 종식 시킬 '기적'이 일어날 것처럼 미국인을 호도해왔다. 백악관 참모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에 경멸의 눈총을 주곤 했다고 한다. 연이은 대규모 유세장을 비롯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사회적 거리두기 등 기본 방역수칙을 무시해왔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슈퍼전파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미 그와 밀접 접촉한 일부 고위 인사들이 양성 판정을 받았고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펜스 부통령도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하루 전 가벼운 증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골프 클럽에서의 선거자금 모금회에 갔었다고 알려졌다. 지난 첫 TV토론에서는 '매번 마스크를 쓰고 있고, 그렇게 큰 마스크는 처음 본다'며 바이든 후보를 조롱하기도 했다. 그리고 토론장 앞줄에 앉아 있던 트럼프 가족도 역시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미국 내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20만 명을 넘으면서 정부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잘못을 주 정부 탓으로 돌리고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역병의 심각성을 경시하고 자기 정부니까 이 정도라고 강변했다. 특히 소수인종이 공중보건의료에 취약해 백인보다 사망률(흑인 3배, 남미계 5배)이 훨씬 높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어느 대통령보다도 흑인을 위해 잘 해줬다고 황당한 주장을 했다.

미 정부의 방역실패는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감염됨으로써 대선의 최대쟁점으로 부상했다. 아울러 그동안 쌓여온 논쟁적 문제들이 트럼프에게 악재로 함께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 심리, 대공황 이후의 최대 경제 불황, 미국 사상 최대의 흑인 인권 소요, 캘리포니아 산불관리 실패, 연방 대법관 임명 논란, 대통령 측근들의 폭로, 그리고 최근의 탈세 의혹 등이다. 2016년 대선의 '기적'을 가져온 '숨은 백인 지지표'가 재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민주당과 '국가 심층부'가 우편투표 등에서 선거부정을 획책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음모론을 제기해 혼란을 극대화시키려 하고 있다. TV토론에서 바이든의 토론을 집요하게 방해하는 트럼프의 태도는 정상적인 선거과정을 치를 의사가 없음을 보여준다. 대통령의 저품격을 여실히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시청자들에게 미국 망신을 철저하게 시켰다. 사실 2020 미국 대선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는가를 걱정하게 하는 대목이다. 미국이 자유민주주의 모델국가로서의 위상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어떻든 이번 대선을 계기로 집권하는 동안 자국은 물론 세계에서 끊임없는 논쟁과 우려를 조장한 장본인이 사라질 가능성은 더 커졌다. 선거는 본인이 잘 해서 이기기도 하지만 본인의 실수나 잘못으로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의 기본적 가치와 이상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