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국 칼럼] 경제민주화보다 경제자유화가 더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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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칼럼] 경제민주화보다 경제자유화가 더 급하다

   
입력 2020-10-15 18:58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자유주의연구회 회장


[민경국 칼럼] 경제민주화보다 경제자유화가 더 급하다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자유주의연구회 회장
이번 정기국회에서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등 '기업규제 3법'을 통과시키려고 한다. 흥미롭게도 그 법안을 야당인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지한다. 그의 지지에는 경제민주화 논리가 깔려 있다. 박근혜 정부도 재벌규제, 골목상권보호 등 경제민주화 이름으로 규제·보호정책을 쏟아냈다. 그런 경제민주화 망령이 되살아나 정치권을 맴돌고 있다.


원래 경제민주화의 이념적 고향은 20세기 초의 독일이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엘리트적 독재가 저지른 만행에 대한 분개심에서 나온 반사적 행동으로 도입한 것이 경제민주화다. 생산과 분배에 관한 결정에 국민 전체가 참여해야 한다는 게 경제민주화의 본질이다. 자본, 토지, 기업 등 생산수단은 개인의 소유도, 국가소유도 아닌 집단소유다.
그와는 달리 한국의 경제민주화는 약자인 중소기업, 노동자, 소액주주는 보호·지원하고 대기업, 대주주 등 강자는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 논리는 시장은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악(惡)이 구조화돼 있다는 이유로 성공한 대기업을 적대시하는 반(反)시장정서를 전제한다. 후세의 사가(史家)들이 21세기 초 대한민국 경제사를 쓴다면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이 된, 그래서 나라가 기운 시기라고 기술할 게 틀림없다.

제안된 법안들은 새로운 건 아니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기업가정신과 투자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이유로 폐기됐던 악성규제들이다. 그럼에도 팬데믹 상황에서 경제민주화가 왜 다시 등장했느냐고 사람들은 묻는다. 코로나19가 불러온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피눈물을 흘리면서 애쓰는 기업들을 규제하겠다는 발상은 반시장정서 이외에 달리 설명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주목할 문제는 경제민주화에 깔려있는 반기업정서의 뿌리다. 흥미롭게도 그 뿌리는 본능에 있다. 인간은 그래서 뼛속까지 사회주의자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사회주의자인 이유는 현생인류로서 우리의 본능과 심리적 구조가 형성되었던 시기의 원초적 환경 때문이다. 그 시기는 석기시대였다. 당시 인류는 소규모(30~150명)의 그룹을 지어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수렵과 채집생활로 삶을 영위했다. 그룹 내의 집단적 삶의 세계는 유대감, 나눔, 그룹에 대한 애착심을 갖고 서로 얼굴을 마주하면서 더불어 사는 것이었다. 생산은 없었고 자연이 준 것에만 의존했다. 한 사람이 더 가지면 다른 사람은 적게 갖는 경제적으로 매우 척박한 세계였다.


그런 본능의 눈으로 보면 시장사회의 경쟁은 비인간적인 것처럼 보인다. 교환은 한 사람의 이득이 다른 사람의 손실로 귀착되는 영합(零合)게임이고 소득불평등은 약자에 대한 착취와 무자비한 공격의 결과로 비친다. 그러니까 시장은 전지전능한 국가 이성을 통해서 계획·규제할 대상이라는 게 경제민주화 논리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우리가 척박했던 보릿고개를 극복하고 오늘날 전대미문의 문명화된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된 건 정부의 계획과 규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책임감, 자립심, 인격·재산의 존중, 소득불평등에 대한 관용 등 열린 시장사회의 도덕적 가치를 우리가 준수했기 때문이다. 본능의 눈으로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시장도덕은 본능을 억압하면서 읽기, 쓰기, 셈하기처럼 후천적 학습을 통해서 획득한 것이다.

시장도덕은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본능적인 사회주의적 정신에 의해서 밀려나기가 쉽다. 그러나 소규모의 원시세계를 전제한 경제민주화를 제4차산업혁명을 거처 오늘날과 같은 거대하고 복잡한 시장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그 결과의 예는 베네수엘라의 경제를 초토화시킨 사회주의다. 이는 길들이지 못한 본능과 겸손하지 못한 이성이 결합하여 만들어 낸 치명적 산물이다. 경제민주화는 역사를 후퇴시켜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유린하는 '노예의 길'로 가는 길이다.

독일이 경제적 번영을 누린 것은 경제민주화를 깨고 경제적 자유, 즉 규제를 풀고 정부예산과 부채를 줄인 결과였다. 한국경제가 갈 길도 경제민주화가 아닌 경제자유화다. 이 길만이 개개인 모두에게 차별 없이 번영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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