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국 칼럼] 運의 경제학, 자유사회에서 운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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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칼럼] 運의 경제학, 자유사회에서 운의 역할

   
입력 2020-12-21 19:28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자유주의연구회 회장


[민경국 칼럼] 運의 경제학, 자유사회에서 운의 역할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자유주의연구회 회장
개인의 소득 차이가 생산활동에 투입되는 노력, 능력, 성실성, 좋은 동기 등 공로(功勞)의 차이에 상응해야 한다는 게 아리스토텔레스의 '공로원칙'에 따른 '실력주의(meritocracy)'다. 미국의 유명한 사회학자 윌리암 섬너를 비롯한 19세기 보수주의자들은 보상은 공로에 비례한다는 원칙을 자유사회의 도덕의 본질이라고까지 말했다. 보수의 그런 시각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정상에 오르는 사회는 나쁘다고 한다. 성공한 엘리트들은 실패한 사람들을 무능하고 게으른 사람이라고 경멸한다는 이유에서다. 패자는 자긍·자신감을 상실한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의 성공은 운(運)에도 좌우된다는 이유에서 부자는 겸손해야 한다는 말도 아끼지 않는다. 샌덜의 주장은 전부 옳은 게 아니다.


능력주의는 권세가의 거드름을 조장한다는 건 샌델보다도 훨씬 먼저 자유주의자들이 깨달았다. 예컨대, 자유주의의 거두, 하이에크는 70년 전에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은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타인의 성공에 대한 질투와 원한에 사무친 나머지 사회가 불안정하다고 설파했다. 부자의 겸손도 강조했다. 샌델이 간과한 건 능력주의 자체의 문제다. 자유시장에서 개인의 소득은 공로에 대한 보상과 전혀 무관하다. '방탄소년단'이 인기를 끄는 건 재능이나 노력 등 공로 자체가 아닌 노래나 노랫말 또는 춤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할 만한 가치를 주기 때문이다. 그들의 공로는 노래의 수요자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자유시장에서 개인의 소득은 그의 공급이 수요자들에게 주는 가치에 비례한다는 '성과원칙'은 카를 멩거 이래 자유주의의 현대적 버전이다. 샌델을 중심으로 하는 좌파는 그런 버전을, 재분배 옹호론을 차단하기 위한 이론적 전략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그런 비판은 틀렸다. 재화나 서비스 공급자의 공로에 비례해서 개인의 보수(報酬)를 정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은 공급자의 주관적 성격의 공로를 알아야 한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소규모 사회에는 그게 가능하다. 사회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오늘날과 같이 익명의 거대한 사회에서 개별 공급자들의 주관적인 공로를 아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알 수도 알 필요도 없는 공급자의 공로 대신 소비자들은 재화나 서비스가 주는 가치만을 평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화의 묘미가 아닌가!


샌델이 적절히 지적했듯이 경제적 성공은 공로 이외에도 역시 운(運)의 덕택이다. 부자집에서 태어난 것, 타고난 능력은 운이다. '불로소득'이기 때문에 운에 의한 소득 격차는 참을 수 없다는 게 좌파의 목소리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은 자동적으로 경제적 성공과 연결되는 게 아니고 운이 가져다준 기회를 포착하고 수요자들에게 주는 가치를 개발하는 게 기업가정신이다. 지금은 은퇴한 '은반의 여왕' 김연아는 자신의 재능이 천부적이어서 자동적으로 성공한 게 아니라 그 재능을 알아내고 계발해 시장성을 최대화한 기업가정신 덕에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운을 기회로 포착하여 성공으로 이끄는 기업가적 덕목이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그런 성공도 예측 불가능한 상황, 즉 운에 좌우된다. 나약한 인간의 삶에 운은 필연적으로 따라다닌다.

요컨대, 자유시장은 실력사회도, 운만이 지배하는 사회도 아니다. 운만이 지배하는 사회는 성실과 노력의 의미가 없어지고 냉소주의가 만연해 퇴폐적이 된다. 실력만이 지배하는 세계는 실패한 자들은 무능 나태 등의 사회적 낙인으로 자괴감에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시장경제는 그런 퇴행적이고 불안한 세계로 진화하지 않았다. 실패를 운의 탓으로 돌릴 수 있기에 패자는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고 타인들도 낙인찍기보다 '너는 능력도 있고 열심히 했지만 운이 없어 실패한 거야. 더 분발해!'라는 식으로 패자를 위로할 여지도 크다. 개인의 성공이 얼마 만큼 실력 또는 운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자유사회에서 부자, 권세가들이 거드름을 피우지 말고 늘 겸손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샌델의 대안체제와는 달리, 자유사회에서 부자에게 재분배의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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