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아의 `청파소나타`, 동네와 광장에서 오늘의 삶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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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아의 `청파소나타`, 동네와 광장에서 오늘의 삶을 그리다

   
입력 2021-01-07 16:05

도시의 소리 채집한 정규 3집…"내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


정밀아의 `청파소나타`, 동네와 광장에서 오늘의 삶을 그리다
포크 싱어송라이터 정밀아[금반지레코드 제공]

포크 싱어송라이터 정밀아가 2019년 가을 이사 온 청파(靑坡)동은 창문을 열면 남산과 서울역이 보이는 동네다.


서울의 한가운데, '푸른 언덕'이라는 뜻을 지닌 오래된 동네에는 골목골목 소리가 많다. 새벽의 새소리, 봉제 작업장들에 원단을 나르는 오토바이 소리, 서울역 집회 소리와 기차 소리….
정밀아의 정규 3집 '청파소나타'는 그 소리들을 데려와 음악으로 펼쳐 놓는다. 첫 트랙 '서시'는 그가 직접 녹음한 청파동의 새벽녘 분주한 소리로 시작한다.

청파동이라는 구체적 공간 속에서 노랫말은 생동한다. "어제 어제를 살아낸 나는 / 지금 다름 아닌 지금 이곳에 / 그러므로 / 나는 오늘의 나를 살 것이라." 현실에 발을 딛고 선 개인의 서늘하고도 단단한 목소리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청파소나타'는 개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시대성까지 끌어안았다는 찬사를 받으며 대중음악 평단이 꼽은 '2020년의 앨범'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렸다. 수록곡 열 트랙은 도시 속 삶의 풍경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정밀아가 도시에서 채집한 앰비언트 사운드가 그 풍경 속으로 청자를 이끈다.

음악의 일부가 되기 전에는 괴로운 소음이기도 했다. "여기 이사 와서 작업을 하려고 마이크도 새로 설치했는데 소음이 예상치 못하게 너무 많았어요.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는데, 어쨌든, 저에게 오는 외부의 작용이자 환경이니 이럴 바에는 소리도 담아서 현장성을 더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청파소나타'는 1집 '그리움도 병'(2014), 2집 '은하수'(2017)에 이은 정밀아의 세 번째 정규앨범. 최근 전화로 만난 정밀아는 "좀 더 분명해진 시선으로 내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 오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앨범을 설명했다.

정밀아의 `청파소나타`, 동네와 광장에서 오늘의 삶을 그리다
포크 싱어송라이터 정밀아 3집 '청파소나타' 커버[금반지레코드 제공]

청파동으로 이사 온 뒤 그는 동네를 산책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외부 활동도 어려워지고, "워낙에 많이 걷는 타입"이기도 해서 걸어 다니다 보니 골목에 깃든 이야기와 역사를 발견하게 됐다. 산책은 만리동, 아현동 등으로도 이어졌다.

산책하며 만난 재개발의 풍경은 '오래된 동네'라는 곡의 바탕이 됐다. "오래된 동네에 더는 / 오래된 사람이 없네 / 사라진 것들은 더는 / 아무 말 할 수가 없고 / 새것은 새것으로 빠르게 / 또다시 지워진다네." 민중가요 풍의 명징한 멜로디를 정밀아는 나지막하게 읊조린다.

그는 "투쟁가의 리듬이나 사운드를 오늘의 느낌으로 재해석해서 앨범에 담았을 때 무엇을 환기시키며 또 어떻게 들릴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골목을 벗어나니 나타나는 트랙은 '광장'이다. 그의 산책길이 서울역 광장, 시청광장, 광화문 광장까지 자연스럽게 나아갔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서 좀 더 넓은 곳을 바라봤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광장의 모습을 실제 광장에서 채집한 소리와 함께 눈에 선하게 그려낸다.
집회의 외침, 온갖 인간군상이 만드는 소리, 자동차 소리 등이 지나가고 곡 후반 드럼이 휘몰아치더니 광장 위로 빗소리가 쏟아진다. 그는 마치 그림을 그리듯 묘사했다.

"저희 연주자들한테 이렇게 주문했어요. 해가 거의 진 저녁 무렵 넓은 광장 끝에 어떤 사람이 서서 말없이 광장을 바라보고 있어요. 어디선가 비 냄새가 오는 느낌이고요, 저 멀리서 밀려오는 먹구름의 천둥소리를 드럼으로 쳐 달라고 했죠. 곧 비를 뿌릴 기세로요. (웃음)"

오늘의 우리에게 "젖은 마음을 내어 말릴 / 한 평 마음의 광장"이 있는지 묻는 마지막 대목은 길게 여운을 남긴다.

'청파소나타' 속 정밀아의 이야기는 이렇듯 개인에서 동네로, 또 광장으로 시야를 확장하며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는 "나를 이야기하려면 내 주변의 것들을 반드시 봐야 하는 것"이라며 "내가 어떤 소리를 듣고 어떤 것이 지금 내 시야 안에 들어오는지를 계속 탐구하고 질문하다 보니 이런 노랫말들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정밀아의 `청파소나타`, 동네와 광장에서 오늘의 삶을 그리다
포크 싱어송라이터 정밀아[금반지레코드 제공]

앨범 속 시간 흐름도 유기적이다. 가장 먼저 배치한 '서시'가 새벽을 노래했다면 마지막 곡 '초여름'은 시점이 "터벅터벅 집으로 오는 밤"이다. 그는 "앨범 전체 사운드의 색채는 블루와 그린 어딘가를 오가는 소리"라고도 표현했다.

정밀아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음악을 향한 마음이 늘 씨앗처럼 그의 안에 있었다. "꼬마 때부터 음악과 미술을 비슷한 비율로 좋아했던" 그는 2012년 여름 즈음부터 기타를 들고 인디 공연장의 '오픈마이크'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그림 작업은 지금도 병행하고 있다. 앨범 부클릿이나 포스터 디자인이 그의 손을 거치기도 했다. 그에게 음악과 미술은 "서로를 더 갈망하게 하는" 작업이다.

재능 많은 창작자이자, 왕성하게 공연 무대에 서 온 그에게 코로나19는 고민을 안겼다. "이럴 때 창작자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요즘 정말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팬데믹 시대를 그린 곡 '환란일기' 속 노랫말이 당분간은 우리 모두에게 최선이 아닐까. "이렇게 많은 걸 잃고 / 겨우 조금을 배우고 / 보통 아닌 것들이 / 보통이 되는 오늘을 살아갑니다 / 내일 또 내일의 태양이 뜨면 / 정성껏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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