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최종 결정문을 확인한 결과 SK이노베이션(이하 SK)이 사실상 '어떤 소재를 어디서 공급받는지' 등 자사의 배터리 생산공정 대부분에 대한 정보를 침해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소위 '증거 삭제'에 따른 절차적인 문제 때문에 패소했다는 SK의 주장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LG는 또 미국 ITC가 이번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수입 금지 조치를 확정하더라도 자체 증설 등으로 충분히 포드나 폭스바겐의 배터리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본 입장은 상생"이라며, SK의 진정성 있는 합의 자세를 취해줄 것을 재차 촉구했다.
LG는 5일 기자들을 상대로 온라인 컨퍼런스콜을 열고 이 같이 밝혔다. 이한선 특허담당 상무는 ITC의 최종 결정문을 확인한 결과 "22개 침해 내용이 다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것은 BOM(원자재 부품명세서)"이라며 "우리가 쓰는 소재를 어디에서 받고 얼마에 구매하는 지 등의 정보를 총 망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작업 공정의 세부 사항을 기재한 내용도 가져갔다며, 이는 사실상 거의 전 영역에서 LG의 기술을 침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조달은 물론 공장 운영의 세부 노하우, 여기에 수주 가격 제시안 등까지 모두 SK가 가져갔다는 것이 LG 측의 설명이다.
ITC는 이날 최종 결정문에서 LG가 침해당했다고 주장한 11개 카테고리·22개 영업비밀을 그대로 인정했다. 여기에는 전체 공정, 원자재부품명세서, 각종 제조 공정 등에 대한 영업비밀들이 포함됐다.
SK는 ITC의 최종 결정문 공개 직후 입장문을 내고 "(ITC가)실체적인 검증이 없이 소송 절차적인 흠결을 근거로 결정했다"며 "침해됐다는 영업비밀이 무엇인지, 어떻게 침해됐다는 것인지에 대해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이에 LG는 즉각 컨퍼런스콜을 개최해 구체적인 영업비밀 침해 사례를 들며 정면 반박한 것이다.
LG 측은 "ITC라는 미국 정부 기관이 2년 동안 충분히 시간을 두고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며 "결정을 받아들이고 지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자세로 대화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미래를 위해 좋은 것"이라고 SK측에 메시지를 전했다.
LG는 이와 함께 SK 배터리의 수입 금지 조치로 미국 내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제조에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이들은 최종 선택은 완성차 업체에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현재 미시건에 있는 배터리 공장 라인 증설과 신규 공장 건설로 폭스바겐과 포드에 제시한 2년과 4년 배터리 수입금지 유예기간 내에 대체할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LG 측은 지금까지 '선 수주 후 증설' 전략을 지속했지만,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친환경차용 배터리 수요에 대응해 조만간 선제적인 투자 계획을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LG는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맞춰 전기차에 들어가는 파우치형 배터리 뿐 아니라 원통형, 에너지저장장치(ESS) 용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ITC의 결정이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친환경 정책에 영향을 주지 않을 만큼 정교했다는 것이 LG 측의 설명이다. LG 측은 또 최근 폴리 트로튼버그 미국 교통부 부장관 지명자가 청문회에서 ITC의 판정이 바이든 정부의 녹색 교통 목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예정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원론적 수준의 답변으로 이해한다"고 해석했다.
LG 측은 아울러 지난달 10일 ITC의 최종결정 이후 지금까지 SK 측에서 단 한번도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공개했다. 이어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경우 원칙대로 소송에 임할 수 밖에 없으며 배상금액 역시 원칙대로 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LG 측은 "협상의 문은 열려있다"며, ITC의 결정을 인정하는 진정성 있는 자세로 임할 경우 합의금 지급 방식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개적인 사과 같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단 합의금 산출 기준은 미국 연방비밀보호법(DTSA)에 따른 원칙을 재차 강조하며, SK와의 합의금 규모 차이가 "시장에 알려진 대로 여전히 조 단위 차이가 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LG는 3조원 안팎, SK는 수천억원 대의 합의금을 각각 제시해 협상에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LG는 최근 메디톡스 등이 마찬가지로 ITC의 최종 판결 직후 일시불과 로열티, 지분 지급 등의 방식으로 4000억원 수준의 합의를 봤다고 소개하면서, 보톡스 시장이 배터리의 10분의 1도 안되는 점 등을 고려해 합의금을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악의적인 기술탈취가 있을 경우 200%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다는 DTSA의 기준 등을 고려하면 LG의 합의금 제안이 과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LG는 만약 합의를 요청하지 않을 경우 원칙대로 남은 국내·외 소송에 임할 수 밖에 없다면서, 재차 진정성 있는 대화에 임해줄 것을 촉구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