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DT현장] 과학계의 `폭망 인사`](http://contents.dt.co.kr/images/202105/2021050602102269731001[1].jpg?var=5022 "[DT현장] 과학계의 `폭망 인사`")
임 후보자는 제자 논문 표절·남편을 위한 논문 내조, 외유성 가족 동반 해외 출장, 당적 보유, 자녀 이중국적 등 여러 의혹을 제기한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사실과 다르다" "인지하지 못했다" "사려 깊지 못해 송구스럽다" 등의 궁색한 답변으로 일관할 뿐, 시종일관 제대로 해명하지 못했다.
특히 "학위 논문과 학술지 논문 동시 게재는 학계에서 권장 사안이다" "해외 출장은 자녀들과 함께 갔지만, 비용은 자비로 썼다" "공인중개사에 일임해 몰랐다" "22세 이전에 국적을 선택하는 걸 전혀 몰랐다" 등의 해명은 국민들의 눈높이와 정서에 반한 것들이어서 '장관 후보자 자질 논란'을 키웠다. 이런 임 후보자에게 야당 의원은 "자진 사퇴하라"고 거세게 몰아 세웠고, 보다 못한 여당 의원들은 자신의 질의시간에 임 후보자에게 해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등 적극 엄호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로서,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과학기술과 ICT 관련 정책 비전과 철학, 소신 등을 국민들에게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과학계 인사는 인사청문회를 본 후 "과연 이런 자질과 역량을 지닌 사람에게 우리나라 과학기술과 ICT를 맡겨야 할 지 걱정이 앞선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16일 청와대가 임 후보자를 과기정통부 장관으로 내정하자 과학계는 '환영·기대' 대신 놀람과 함께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청와대가 임기 3년 중 3개월이 채 안 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신분이던 임 후보자를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깜짝 인사'를 두고 과학계에선 "동네 반장과 통장도 임기가 있는 법인데, 이런 인사가 어딨냐"고 허탈해 했고, "얼마나 사람이 없었으면, 임기 3개월도 안 된 사람을 장관에 앉힐까"라는 말로 이번 정부의 협소한 과학계 인사 풀을 꼬집기도 했다.
임 후보자는 연구회 이사장 공모 과정에서도 자격 논란을 불러왔다. 이사장 공모 과정에서 당적(더불어민주당)을 유지해 오다가, 이사장 임명 시에는 당적이 없어야 한다는 규정을 알고, 최종 선임 열흘을 남겨둔 시점에 탈당해 이사장 자리에 올랐다. 만약 규정을 몰랐다면, 이사장 결격사유에 해당해 최종 임명이 안 됐을 뻔 했다. 임 후보자가 얼마나 준비 없이 이사장 공모에 지원했는지를 지레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임 후보자는 본인 스스로 이사장 공모에 응한 것이 아닌, 특정 단체의 추천으로 공모에 참여했다. 전혀 준비가 안 돼 있었기에 공공연구노조가 이사장 3배수 후보에게 보낸 공개 질의서에서 임 후보자만이 답변서를 보내지 않았다. 연구 현장에선 출연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대학교수인 임 후보자가 공개질의서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할 수 없어 회피한 것 아니냐고 의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후 덜썩 이사장에 선임된 임 후보자는 그 때보다 거의 두문불출하며 연구회와 출연연 업무 파악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렇다 보니 출연연 연구현장과의 소통은 차일피일 늦어졌고, 장관 후보자 내정 전날(지난달 15일) 처음 참석한 행사에서 임 후보자는 "3개월 간 열심히 연구회 이사장으로서 업무를 파악했다"고 했지만, 그 말은 하루 만에 '공수표'가 돼 버렸다.
돌이켜 보면, 유독 이번 정부 들어 '청와대발(發) 과학계 인사'는 계속해서 삐걱거렸다. 2년 전 조동호 KAIST 교수가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됐다가 각종 의혹 끝에 해외 부실학회 참석이 결정타가 돼 지명이 철회됐다.
여기에 친문 실세로 불리는 문미옥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이 막강한 영향력을 통해 과학계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 원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에 이어 과기정통부 차관, 그리고, 지난 1월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에 새로 선임됐다.
청와대는 과학기술계 노조의 거센 반대에도 문 원장을 과학계 핵심 자리에 임명해 전형적인 '회전문 인사'라는 비난을 받아 왔다. 문 원장이 취임하자 그의 집무실 건물과 복도에는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노조의 플랜카드가 최근까지 붙어 있을 정도였다.
고구마 넝쿨과 같은 의혹에도 거대 여당은 정의당의 '데스 노트'에 이름을 올린 임 후보자 청문 보고서를 채택할 것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의 반발에도 임명을 강행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과학계는 '당혹→좌절→체념'으로 이어지는 '폭망 인사'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길 이번 정부에 학수고대하고 있을 뿐이다.
이준기기자 bong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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