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평균 거래대금 40조 훌쩍…주식투자 규모보다 많아
업계 "특금법으로는 가상자산 산업·이용자 보호 어려워"
김병욱 의원 "가상자산 시장 보호 업권법 이달 중 공개"
정부는 여전히 암호화폐를 투자자산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 지명자는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서를 통해 "가상자산은 기초자산이 없어 가치 보장이 어렵고 가격변동성이 매우 높아 화폐나 금융상품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최근 가상자산에 대한 수요증가는 미래 수익에 대한 전망을 바탕으로 한 투자라기보다는 높은 가격 변동성을 통해 수익을 기대한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는 "가상화폐는 법정화폐나 금융투자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가치를 보장할 수 없어 기본적으로 투자자가 알아서 책임져야 한다"는 그동안의 정부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관련법이나 규제로 투자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무관심으로 방치해두기에는 시장 규모가 너무 커졌다는 이유에서다.
6일 글로벌 암호화폐 시황 중계 사이트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기준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의 최근 24시간(하루) 거래대금은 40조4272억원에 달한다. 거래소별로 보면 업비트가 34조7461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빗썸 3조9905억원, 코인원 1조5287억원, 코빗 1517억원으로 순이었다.
이는 개인의 주식투자 거래대금보다 많은 수준이다. 지난 4일 기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거래대금은 각각 15조9624억원, 9조6631억원이었다. 개인의 가상화폐 하루 투자규모가 국내 주식 투자 규모보다 크다는 얘기다.
암호화폐 투자 수요가 급격히 불어났지만, 관련법은 임시방편에 그치는 모양새다. 일단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을 통한 신고제를 적용하고 있다. 은행은 가상화폐 거래소로부터 실명 확인 입출금계좌 발급 신청을 받으면, 해당 거래소(가상자산 사업자)의 위험도·안전성·사업모델 등에 대한 종합적 평가 결과를 토대로 실명 입출금 계좌 발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사실상 은행에 입증 책임을 부여해 거래소가 영업하기에 까다로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개별 평가로는 자금세탁 방지나 투자자보호를 하는데 역부족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지난달 한국블록체인협회가 주최한 '가상자산업권법 왜 필요한가' 세미나에서 이종구 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은 "규제당국은 지난 2017년의 암호화폐 버블로 인한 투자자 피해가 반복될까 우려하고 있다"며 "협회 차원에서도 자율규제를 하고 있지만, 이용자 보호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디지털에셋(KODA)의 조진석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개정 특정금융정보법으로는 가상자산 산업 육성과 이용자 보호가 어려운 만큼 가상자산업권법 제정을 통해 건전한 사업자는 육성하고, 그렇지 못한 곳은 도태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시장의 제도권 도입에 대한 논의가 업계 안팎에서 이뤄지면서 정치권은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겠다고 나서는 중이다.
일단 업계는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예고한 '업권법'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김병욱 의원은 가상자산을 제도권에서 관리하는 업권법을 발의하기 위한 막바지 단계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이 마련한 법안에는 가상자산 시장을 '산업'으로 정의하고 가상화폐 투자자 보호, 업계 운영형태, 투명한 시장환경 조성을 위한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시행 중인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은 자금세탁 방지에만 초점을 맞춘 법으로 투자자와 사업자를 보호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업계 반응을 반영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앞서 김 의원은 최근 "특금법은 자금세탁방지가 목적인만큼 가상자산 산업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 가상자산업권법 제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가상자산 산업의 발전과 투자자 보호를 위한 가상자산 제도화에 균형적 관점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기도 하다.
특히 김 의원이 준비 중인 업권법에는 같은 당 박용진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전자금융거래법 일부 개정안'은 물론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가상화폐 특별법'까지 포함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금법 개정안'에는 가상화폐 정의에서부터 가상화폐 취급업 인가제(자본금 5억원 이상) 도입을 추진 내용과, 가상화폐 시세 조종·자금세탁 행위 등의 금지, 거래방식 제한, 가상화폐 이용자에 대한 설명의무 등의 내용도 담겼다. '가상화폐 특별법'은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자금세탁 방지 의무, 영업 신고, 정보보호관리체계 등에 대한 법적 규제를 담고 있다.
김병욱 의원실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은 물론 아직 초안 공개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동안에 나왔던 법안과 업계의 발전과 투자자들의 보호를 위한 내용을 전반적으로 다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법안은 이르면 이달 안에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용우 민주당 의원도 법안을 마련 중이다. 이 의원은 가상자산 시장 건전화를 위해 시세조정 등 불공정 거래에 동원된 자금까지 몰수·추징하는 내용을 법안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지난해 유사한 내용이 담긴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야당에서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가상자산 과세를 1년 유예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조만간 발의할 계획이라고 예고했다.
윤 의원은 "가상자산이 무엇인지 명확한 정의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세금부터 매기겠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며 "정부로부터 자산으로 인정조차 받지 못한 채 과세만 하는 것은 납세의 기본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형기자 ybro@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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