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 칼럼] `가족의 정의` 함부로 바꿀 일인가

메뉴열기 검색열기

[이은경 칼럼] `가족의 정의` 함부로 바꿀 일인가

   
입력 2021-05-27 19:32

이은경 前여성변호사회 회장·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이은경 칼럼] `가족의 정의` 함부로 바꿀 일인가
이은경 前여성변호사회 회장·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정부는 혼인·혈연·입양으로 맺어진 가족 이외에 비혼 동거, 노인 커플, 위탁 자녀 등을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고, 이들이 각종 사회제도에서 차별받지 않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여성가족부장관이 5년마다 수립하는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안'에 담긴 내용이다.


이는 현행법 개정이 필요하다. 민법 제779조는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 직계혈족, 형제자매'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규정하고, 건가법 제3조 제1호는 가족의 개념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여가부가 가족의 정의를 바꿔야 할 당위로 내세우는 키워드는 '차별'과 '지원'이다. 혼인·혈연·입양과 관계없는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차별을 제거하고, 이들에게도 각종 복지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혼 동거, 노인 커플, 위탁 자녀 등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이들에 대한 차별을 막는 방법은 '개별 법령'을 개정하고 '기존 제도'를 정비하는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부모, 다문화, 장애인 가족과 소외계층 아동, 청소년, 노인, 미혼 부모 그리고 점점 늘고 있는 1인 가구 등은 '섬세한 맞춤형 대책'을 마련할 일이지 '가족의 정의'부터 덜컥 바꾸고 볼 일은 아니다. 실제로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로 들고 있는 '미혼부 자녀의 출생신고에서 차별을 없앤다'는 것은 이미 국회가 관계 법령인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해 문제없이 시행 중인 사안인데, 이를 모를 리 없음에도 굳이 차별 사례로 든 것이다.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의 방점이 복지의 확대나 차별의 종식이 아니라, 종래의 가족 개념을 재구성하려는 성급한 시도란 지적이 무리해 보이지 않는 이유다.

'가족의 정의'를 바꾼다는 건 매우 중차대한 문제이고, '가족의 개념'이 모호해지는 건 단순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혼인·혈연·입양 이외에 과연 무엇으로 '가족'을 재구성해야 할지부터 난제가 아닐 수 없다. 비혼 동거 등 기존 법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의 규모가 얼마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이들을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기 위한 등록제도를 마련하는 일, 관련 법체계를 근본적으로 손질하는 일은 절대 만만치 않을 것이고, 각종 지원에 필요한 국가 재정도 엄청날 것이다.


또한 탈세, 지원과 혜택을 위해 새로운 제도를 악용하는 이들이 적지 않고, 각종 정부 수당 지급이나 아파트 청약 등 가족 혜택을 노린 '위장 가족'도 속출할 것이다. 가뜩이나 늘고 있는 가족 분쟁도 더 급격한 속도로 증가할 가능성도 크다. 게다가 가족이란 의식만 공유하고, 실제로 동거 정도만 해도 법적 가족으로 볼 수 있다면, 현재 논쟁이 극심한 '동성결혼'에 대하여도 슬그머니 문을 여는 셈이다.

또 한가지, '가족의 정의'를 바꾸는 것이 '가족의 해체'로 달려가는 지름길일 수 있다는 우려도 아예 무시할 순 없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혼인과 출산의 장려, 가족해체 예방을 추진해 온 국가 정책에도 반하는 측면이 다분하다. 그런데, 여가부는 건가법 개정에 대한 관계부처 협의를 이미 끝냈고, 민법 개정에 대한 법무부 협의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여당이 제출한 건가법 개정안은 숫제 '가족'에 대한 정의규정을 삭제하고 혼인과 출산, 가족해체 예방, 이혼 예방 및 이혼가정지원, 건강가족교육 등 관련 조항도 대폭 없앴다. 그러나, 과연 무엇을 위함인지 답답한 마음이 앞선다. 여가부 주장대로 소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로 인한 차별을 막기 위함이라 한들, 득보다는 실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결혼기피 가속화' '저출산 심화' '부부 헌신도 하락'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낡고 진부한 사고"라고 몰아칠 수만은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에서 '가족의 범위'를 새로 규정하는 작업은 '결혼제도 밖의 다양한 가족 구성을 보장하고, 친밀성과 돌봄 기반의 대안적 관계에서 권리보호방안을 마련한다'는 식의 '착한 질문'만 나열한 여론조사 몇 번으론 절대 안 된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한 충실한 합의를 거쳐야 하고, 국회도 가정의 근간이 바뀌는 일엔 사려 깊고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