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수의 세류청청] `단돈 10원`과 1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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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수의 세류청청] `단돈 10원`과 1그램

박양수 기자   yspark@
입력 2021-06-07 22:34

박양수 콘텐츠에디터


[박양수의 세류청청] `단돈 10원`과 1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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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7일 검찰 고위급 간부 인사를 언급하는 대목에 '1그램(g)'이란 표현을 써 눈길을 끌었다. 검찰 발령 인사를 하면서 "사적인 것은 단 1그램도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새 유행하는 '일(1)도 없다'는 말과 어감이 비슷하다. 1g은 1톤(t)의 1백만분의 1, 1킬로그램(㎏)의 1000분의 1과 같고, 티스푼으로 설탕 한 숟가락 정도의 아주 적은 분량이다. 문맥상 같은 자리에 '조금도' '전혀'와 같은 단어를 넣어도 어색하지 않다. 작가 한비야의 에세이집 '1그램의 용기'에서 차용한 듯한 느낌도 든다.


박 장관이 말 끝에 "공사가 분명히 구분된 인사" "공적으로 판단한 인사"라고 했다. 그걸로 유추해볼 때 여기서의 1그램은 '공사 구분 못한, 사적인 인사' 정도로 풀어써도 무방할 듯 싶다.
사람들이 대화 속에 숫자를 섞는 건 왜일까. 은연 중에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선명하게 보여주려는 속내가 숨어 있다. '절대 아니다'라고 하는 데 뭔지 양에 안 차고, 상대방도 믿지 않는 눈치다. 그런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시각화된 강조어인 셈이다. 하지만 자칫 잘못 사용할 경우 상대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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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 모처에서 'K-9 자주포 폭발사고' 피해자 이찬호씨와 만나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윤석열 전 총장 측 제공>


윤석열 전 검찰 총장의 '단돈 10원'이 그런 경우다. 윤 전 총장이 "내 장모가 다른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적은 있어도 10원 한 장 피해준 적 없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호된 꼴을 당하고 있다. 윤 전 총장측에선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고, 발언이 와전된 것이라며 부인했다. 하지만 정작 윤 전 총장 본인이나 이 말을 전한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가타부타 말이 없으니 지켜보는 사람만 답답할 노릇이다.

평소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 좋아하는 여야 정치인들은 윤 전 총장측의 부인에도, 공격거리를 놓치지 않았다. 애초부터 발언의 의도나 내용의 진위 따위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SNS에 '10원짜리 한 장'이란 제목의 글까지 올렸다. 평생을 살면서 남에게 10원짜리 한 장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윤 전 총장 영입에 공들였던 국민의힘도 그를 난도질하긴 마찬가지였다.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 나선 이준석 후보까지 "검사의 전문적 식견으로 사안을 들여다보고 판단을 했다면 나중에 그 결과까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윤 전 총장 공격에 가세했다.


10원 짜리는 사실상 한국에서 가장 낮은 가치의 동전이다. 정 의원의 말처럼 윤 전 총장의 장모가 남에게 하찮은 실수 한 번 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믿긴 힘들다. 다만 1그램이 진짜 저울로 잰 1그램이 아니듯, 여기서의 10원도 진짜 돈 10원이 아닌, 강조를 위한 수식어라는 건 모두가 안다. '10원짜리 피해'가 없었냐고 따지고 드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코미디다.
[박양수의 세류청청] `단돈 10원`과 1그램
이성윤 서울고검장. <연합뉴스>


문제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단돈 10원, 1그램이란 단어가 얼마나 진실성을 담고, 실제 내용과 얼마나 부합하느냐다.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서 이성윤 전 서울중앙지검장을 서울고검장으로 승진시킨 건 언젠가는 역사의 심판대에 세워 판단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다. 서울고검장직은 서울과 수도권 일부지역 검사 비위에 대한 감찰 업무를 총괄하는 등 주요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다. 그런 자리에 피고인 신분의 이 전 지검장을 앉힌 건 법의 정신을 파괴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허물어뜨린 '정치 반란' 행위다.

이번 인사가 '사적 보은 인사'란 건 삼척동자도 아는데, '공정한 인사'라고 우긴다면 공허한 주장일 뿐이다. 박 장관 개인적으론 사심이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청와대 지침대로 정권 비리 수사를 뭉갠 검사는 승진·영전하고, 정권 뜻을 거역한 채 수사하고 파헤친 검사가 좌천된 인사를 한 건 정권의 의지가 반영된 것 아닌가. 윤 전 총장도 마찬가지다. 그의 장모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선 아는 바 없지만, 윤 전 총장의 주장과 완전히 배치된다면 그 또한 대(對)국민 사기극이 될 뿐이다. 10원짜리 동전, 1그램의 양심이라고 하찮게 봐선 안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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