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직업에 귀천 있나"...가사도우미 된 칭화대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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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직업에 귀천 있나"...가사도우미 된 칭화대 졸업생

박영서 기자   pys@
입력 2021-06-24 12:06
[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직업에 귀천 있나"...가사도우미 된 칭화대 졸업생

중국 최고 명문대학으로 입학하기가 그야말로 '바늘 구멍'인 칭화(淸華)대학. 그런데 이 대학 졸업생이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있다고 해서 논란이다. 내로라하는 최고 인재가 가정부를 한다는 것이 '국가적 낭비'라는 지적도 있지만 세태가 그만큼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최근 중국 인터넷상에서 '칭화대학 졸업생이 가사도우미를 한다'는 기사가 떴다. 가사서비스업 인력파견회사가 구인구직 전문사이트에 '칭화대 출신의 가사도우미'라는 제목으로 리징(李靜)이라는 여성의 이력서를 게재한 것이 온라인상에 퍼진 것이다. 기사 조회 건수는 4억 건에 달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회사측에 따르면 그녀는 1991년생으로 올해 29세다. 그녀는 2016년부터 가정부로 근무 중이다. 그는 상하이(上海) 최고급 아파트 탕천이핀(湯臣一品)에서 가사도우미를 했다. 탕천이핀은 상하이 푸둥(浦東)의 중심지역인 샤오루자쭈이(小陸家嘴)에 들어서 있는 아파트다. 상하이는 물론이고 중국 대륙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다. 리징은 상하이 푸둥의 고급 별장인 주젠탕(九間堂)에서도 가사 관리를 했다고 한다. 현재 그는 새 직장을 찾고 있다. 아이의 가정교사, 집 전반의 관리를 맡는 대가로 월 3만5000 위안(약 615만원) 이상의 보수를 원한다고 밝혔다.

인터넷에 그녀의 구직 글이 올라오자 사람들은 놀랐다. 칭화대는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이 졸업한 대학이다.

칭화대를 나온 인재가 가사 도우미를 하는 것은 낭비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가 진짜로 칭화대를 나왔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었다. 회사측은 중국 매체들의 취재에 "이름은 가명이지만 칭화대 나온 것은 맞다"고 했다.

칭화대 졸업의 진위야 어떻든 이제 중국에선 유명 대학 졸업생이 가사도우미를 하는 일은 드문 사례가 아니다. 지난해에는 시안(西安)외국어대학 석사 학위를 가진 32세 여성 류쌍(劉雙)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한 그는 유명 하이테크 기업에 취직해 아프리카 주재 근무도 했다. 연수입 30만 위안(약 5270만원)의 안정된 직장이었지만 결혼과 출산을 계기로 퇴직한 후 보모로 전향했다. 유씨는 "출산 직후 젊은 여성을 보모로 고용한 적이 있었다"면서 "나는 이 직업에서 장래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류 씨는 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보모다. 월~금요일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일하면서 월 2만 위안(약 351만원) 정도를 벌고 있다. 1년이면 24만 위안(약 4215만원)이니 전에 다녔던 직장 연봉에 가까운 벌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에선 이런 고급 가사도우미 뿐만 아니라 일반 가사도우미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자연스레 보수도 올라가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이 열렸던 2008년만 해도 일반 가사도우미의 월급은 1000 위안(약 17만5000원) 정도에 불과했다. 당시 베이징과 상하이에 사는 주재원 가정에선 가사도우미를 고용하지 않은 집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10배인 1만 위안(약 175만원)을 줘야 구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도우미를 쓸 수 있는 중국인 부유층이 늘어난 탓이다. 또 한 가지는 대졸 졸업자들이 갈수록 많아지면서 청년실업이 고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중국에선 대학 졸업생 수가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올 여름 졸업 예정자는 전년 대비 35만명 증가한 909만명에 달한다. 내년 대학 졸업자 수는 1000만명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무직 구인은 졸업생 증가율만큼 늘지 않아 '졸업이 곧 실업이 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반면 현장의 근로자는 부족한 실정이다. 보수를 큰 폭으로 올려도 사람이 오지 않는다. 고용시장의 이같은 미스매치는 고학력 여성이 가사업계로 들어오게 만들고 있다. 자녀들에게 영어, 교양, 예절 등을 가르치는 '메리 포핀스'(Mary Poppins)와 같은 고급 도우미를 원하는 부유층에게 고학력 여성은 '안성맞춤'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중국의 가정서비스업 시장 규모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 따르면 가정서비스업 시장 규모는 2018년 5762억 위안(약 101조2038억원)에 이르러 전년 대비 27.9% 성장했다. 조만간 1조 위안(약 175조64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대학들도 잇따라 가정대학을 개설하고 있다. 톈진(天津)사범대학, 후난(湖南)여자학원, 지린(吉林)농업대학 등 여러 대학들은 가정 관련 학부를 새로 열었다.

이 시장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둔 업체도 늘고 있다. 대표적 업체가 쓰촨(四川)성 메이산(眉山)시의 '쑤샤오메이'(蘇小妹)다. 2017년 출범한 이 회사는 고액 연봉을 약속하며 고급 도우미 인력을 모집하고 있다. 회사는 모집한 인력을 프로페셔널 가정부로 양성·파견해 톡톡히 돈을 벌고 있다. 메이산은 중국 송나라의 대문호 소동파의 고향이고, '쑤샤오메이'는 소동파의 여동생이다. 시와 노래에 재능이 뛰어났고 재치까지 겸비했던 여성이었다고 한다.

과거 가정서비스 종사자는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은 농촌 출신 중년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순수한 육체노동이어서 낮은 직업으로 여겨졌었다. 이제는 사람들의 직업관념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고학력 여성들은 고수입이 보장되는 이 직업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사태로 대학 졸업생의 취업난이 심화되는 상황이라 '하우스 매니저'로 위상이 높아가는 가사 도우미는 새로운 일자리로 부상 중이다. 중국의 내로라하는 명문대 출신들이 가사 도우미에 도전하는 것은 새로운 트렌드임에 분명하다. 옛날에는 멸시받던 직업들이 사회환경이 변하면서 고수입 직업으로 간주되는 것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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