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칼럼] "바지 내릴까요?"에 넘어가는 국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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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 칼럼] "바지 내릴까요?"에 넘어가는 국민들

이규화 기자   david@
입력 2021-07-06 19:52

이규화 논설실장


[이규화 칼럼] "바지 내릴까요?"에 넘어가는 국민들
이규화 논설실장

"바지 더 내린다니(…) 참 민망한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바지를 한 번 더 내릴까요?"라고 한 이재명 후보를 향해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회는 이재명의 이 말 한마디로 '정리'가 됐는데, 굳이 필요 없는 사족을 붙였다. 스캔들의 진위야 어떻든 이재명 지사는 이 기지 담은 말로 위기에서 벗어났고 토론회를 '이재명 쇼'로 각인시켰다. 그걸 정색을 하며 다시 받아치는 건 '프로'답지 않다. 국민의힘이 아직 부족한 부분이다.


감성에 꽂히는 이재명의 페이소스를 국민의힘이 무미건조한 에토스로 상대하려 하니 먹히지 않는다. 이재명의 지지층은 저소득층, 경기우도 도민, 40대, 여성층에서 특히 두텁다. 그는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잘 안다. 대리만족, 동정, 연민을 일으키는 페이소스 넘치는 말로 동류의식을 갖게 한다.
국민의힘이 정작 정색하고 문제 삼을 타깃은 이 지사의 지난 1일 발언이다. 해방 직후 미군은 점령군이고 점령군이 친일세력과 합작해 친일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게 됐다는 주장은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말이다. 개인으로 치면 가문을 욕보이고 족보에 먹칠하는 짓이다. 대한민국 국민치고 가만히 있을 사람 없다. 몇 마디 비판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 분열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얄팍한 술수'라고 하는 수준에서 또 그냥 지나가고 있다.

이 문제는 자리를 고쳐 잡고 '그렇다면 한번 따져보자'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진보적(좌파적) 정견에 대해서는 너른 스펙트럼을 갖고 있어도 한미동맹에 대해서는 3분의 2 이상이 양보할 수 없는 가치로 믿고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권 내내 이런 집요함과 치열함을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여권이 헌법에서 자유를 빼려는 폭거까지 시도했던 것이다.

기회는 또 올 것이다. 그렇다면 이재명 지사의 정체와 생리를 알아야 한다. 현재 이재명 지사는 최고의 이슈 메이커가 돼 있다. 그의 정치 철학이나 국정 플랜 등이 어떻든 대중의 시선을 끄는 데는 어떤 후보들보다도 앞선다. 이재명만의 홍보 기제가 있다. 이 지사의 화법은 직설적이고 선명하며 이분법적이다. 그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거칠고 비논리적이고 근거 박약한 것이지만 지지자들에게는 시원하다.


'대깨문'에 이어 '대깨명'(대가리가 깨져도 이재명)이 탄생 중이다. 심지어 여권 내부에서조차 그의 활개를 제어하기에 부족해 보인다. 나머지 여권 대선주자들이 '반명연대'를 구축하려 하지만 이재명의 존재감만 더 굳건히 만들 공산이 크다. 2위, 3위 후보인 이낙연, 정세균 전 총리는 정책, 경륜, 안정감, 논리 등에서 이재명 보다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낙연의 화법은 유머와 재치가 있으나 무겁고 정세균은 너무 점잖은 이미지다.

이재명은 약점을 가리고 강점을 드러내는 데 동물적 감각을 지녔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가난한 집안 형편에 검정고시를 통해 법대에 들어가고,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었으며, 성남에서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린 후 성남시장 재선하고, 특유의 미디어 활용으로 주가를 올린 다음 경기지사가 돼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뿐이다. 덧붙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딱히 놀라운 스펙도 아니다. 단 이재명 지사에게 차별점이 있다면, 페이소스 화법과 포퓰리즘 정책의 달인이라는 점이다.

이재명 지사는 성남시장 8년, 경기지사 3년 동안 공약 이행률이 90% 넘는다고 자랑한다. 그런데 남의 돈(세금) 갖고 인심 쓴 것 외에 무엇을 했나. 청년배당보다 안정적 청년 일자리가 백배 더 중하다. 돈 쓰겠단 '약속' 지키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이재명의 강력한 브랜드가 돼 있다. 국민 네 명 중 한 명이 그를 지지한다. 최근 한국갤럽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윤석열 25%에 이어 이재명은 24%였다. 여기에 '골수 친문'과 75% 국민의 고민이 서려있다. 이재명 쇼에 맘껏 웃되 정신을 잃어선 안 된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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