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두테르테, 나랑 붙자"...파퀴아오, 대선 도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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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두테르테, 나랑 붙자"...파퀴아오, 대선 도전장

박영서 기자   pys@
입력 2021-07-08 14:55
[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두테르테, 나랑 붙자"...파퀴아오, 대선 도전장
필리핀의 복싱 영웅이자 상원의원인 매니 파퀴아오(42)가 다음달 21일(현지시각) 라스베이거스 특설 링에서 27전 무패의 WBC·IBF 웰터급 통합 챔피언 에롤 스펜스 주니어(31·미국)와 맞붙는다. 파퀴아오가 2년여만에 링에 오르는 것이라 복싱 팬들의 기대감이 크다. 하지만 사람들은 파퀴아오가 내년 필리핀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이 될 것인지에 더 관심을 갖는 듯하다.


파퀴아오는 최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선 출마 의지를 보였다. 그는 "나는 정치인이고, 모든 정치인은 더 높은 지위를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시합이 끝나면 곧바로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파퀴아오는 복싱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빠른 발과 무시무시한 핸드 스피드,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8개 체급을 석권해 권투 역사를 새로 썼다. 전적은 통산 67승 2무 7패다.

1995년 프로복싱에 데뷔해서 1998년 WBC 플라이급(50.80 kg)을 시작으로 IBF 슈퍼밴텀급, WBC 슈퍼페더급, WBC 라이트급, IBO 슈퍼라이트급, WBO 웰터급, WBC 슈퍼웰터급, WBC 주니어미들급(72.57kg)까지 8개 체급에서 세계 챔피언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가장 가벼운 체급과 가장 무거운 체급의 체중 차이가 약 22kg이나 된다. 8체급 석권은 전인미답의 위업이다. 이런 선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평가다.

하지만 그도 나락으로 떨어질 뻔한 시기가 있었다. 2011년부터 음주, 바람기, 도박벽이 심해졌다. 새벽까지 술 마시고 노는 일이 잦아졌다. 도박으로 돈을 펑펑 썼다. 연습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해 11월 멕시코 복싱의 상징이었던 후안 마누엘 마르케즈와 라스베가스에서 치른 WBO 웰터급 타이틀 방어전이 새로운 전기가 됐다. 파퀴아오의 방종한 생활을 참을 수 없었던 부인이 경기 당일 호텔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를 않았다. 방에서 나오라고 설득하는 파퀴아오와 실랑이가 벌어졌고, 그 바람에 파퀴아오는 경기장 입장이 크게 늦어졌다.

결과는 3대0 판정승으로 파퀴아오가 승리했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부인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부인의 권유로 성경공부 모임에 다니게 된다.

그는 카톨릭에서 복음주의 개신교로 개종한다. 이를 계기로 소유하고 있던 카지노, 나이트클럽, 레스토랑, 당구장을 모두 팔았다. 도박용으로 키우던 1000여 마리의 투계(鬪鷄)도 친구에게 넘겼다. 도박과 술에서 해방됐고 더 이상 파티는 열리지 않았다. 완전히 새 사람이 됐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었다. 2016년 2월 상원의원 선거운동 당시 지역방송사에 출연해 "동물이 동성끼리 짝짓기 하는 걸 본 적이 있냐"면서 동성애자들이 동물보다 못하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 이 발언은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결국 파퀴아오는 "사람을 동물과 비교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면서 "보수적인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나이키는 파퀴아오와 맺은 광고계약을 해지했다.
이처럼 위기상황도 맞았고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는 필리핀의 국민적 영웅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필리핀 사람들은 그를 좋아한다. 이런 엄청난 인기를 발판으로 그는 정계에 진출했다. 2010년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2016년에는 상원의원이 됐다. 운동선수 겸 정치인이 된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파퀴아오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파퀴아오는 지난해 12월엔 집권여당인 민주필리핀당(PDP-Laban)의 대표로도 선출됐다. 그가 집권당 대표에 오르자 필리핀 정가는 그를 유력한 잠룡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필리핀은 내년 5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 필리핀은 6년 단임제여서 두테르테 대통령은 출마할 수 없다. 두테르테는 자신의 딸이자 다바오 시장인 사라를 출마시키고, 자신은 부통령으로서 러닝메이트로 나선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선 유력한 차기 대통령으로 꼽히는 파퀴아오를 일단 몰아내야 한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가깝게 지냈지만 이제 관계는 돌변했다. 두테르테는 정적이 된 파키아오에 '강펀치'를 날리고 있다.

이달 초 파키아오가 현 정권의 부패 의혹을 제기하자 두테르테는 "어디 가지 말고 네가 얘기하던 부패혐의를 조사해 찾아내라. 그렇게 않는다면 '너는 더러운 자식이다'고 말하겠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두테르테 가문과 '미래권력'간 파워게임이 본격화된 것이다. 오는 17일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파퀴아오를 당 대표직에서 축출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일각에선 그가 대통령 자질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그는 정치인으로서 뚜렷한 성과가 없다. 하지만 파퀴아오는 필리핀 정부군과 민다나오 이슬람반군 간 지루한 내전을 끝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인물로 꼽힌다. 그가 민다나오 섬 출신이면서도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고향인 민다나오섬에서 가장 인기있는 인물이고, 카톨릭도, 무슬림도 아니어서 중립적 입장에 설 수 있다. 내전을 종식시킨다면 그 어떤 역대 대통령보다 큰 업적을 이루는 것이다.

그가 두테르테의 견제를 이겨내고 대권을 거머쥘 지 초미의 관심사다. 파퀴아오는 그동안 강력한 선수들과 빅매치를 벌이며 그들을 계속 쓰러뜨려 왔다. 내년 대선에서도 이같은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세계 최초로 '현역 복싱 세계챔피언 대통령'이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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