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범철 칼럼] 점령군 논쟁의 본질은 국가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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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칼럼] 점령군 논쟁의 본질은 국가정체성

   
입력 2021-07-19 19:59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신범철 칼럼] 점령군 논쟁의 본질은 국가정체성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이재명 경기지사가 촉발시킨 '미 점령군' 논쟁은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이 지사는 "대한민국이 친일 청산을 못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다시 그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며 대한민국의 건국 역사를 깨끗하지 못한 것처럼 말했다. 보수층에서는 왜곡된 역사 인식으로 비난하고 있고, 지지층에서는 미국도 '점령군'이란 표현을 사용했다고 반박하는 상황이다.


논쟁의 핵심은 '미 점령군'이란 표현이 맞는가와 대한민국이 친일세력과 미 점령군의 합작으로 탄생했는가이다. 먼저 맥아더 사령관이 선포한 미 군정 '포고문 1호'를 보면 점령군이라는 표현은 존재한다. 하지만 점령군은 미군의 지위가 아니었다. 미국 태평양육군사령부 또는 전승군(the victorious military forces)이 법적 성격을 지닌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군대가 항복 문서의 조건에 따라 일본이 지배하고 있던 38선 이남의 영역을 장악하고 군정을 실시하기 위해 군을 보낸다는 의미로 점령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포고문 1호'의 내용을 보면 한국을 자유롭고 독립적인 국가로 만들기 위함이라고 설명하며, "점령의 목적이 항복문서조항의 이행과 조선인의 인권 및 종교상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함"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부정적인 의미로 미군이 한국을 강압적으로 점령한 것처럼 표현하는 일은 사실관계의 왜곡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이 친일 세력과 미 점령군의 합작으로 탄생했기에 그 출발이 깨끗하지 못했다는 표현 역시 역사에 대한 무지나 왜곡이다. 대한민국은 항일 독립운동 세력이 미 군정의 도움을 받아 유엔 총회의 승인을 거쳐 자유 선거로 탄생했다. 대한민국 정부 출범 과정에서 김구 선생님을 비롯하여 참여를 거부한 분들이 존재했지만, 대다수 임정 요인과 독립투사들이 정부 수립을 주도했다.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시영, 국방장관 이범석이 이를 증명한다. 심지어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로선 혁명적이었던 토지개혁 정책을 집행하기 위해 농림부 장관에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조봉암을 지명하기도 했다. 독립세력이 주도한 정부가 아닐 수 없다.



정부 수립과정에서 유엔 총회에서 승인을 받아 자유 선거를 했고, 이로 인해 국제사회에서도 인정을 받았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당시 유엔은 한반도 전역에 총선을 실시하려 했지만 북한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 뒤에는 북한 지역을 공산화하려는 소련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 남과 북 어느 쪽이 더 깨끗하게 출발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점령군 논쟁을 지켜보며 걱정스러운 것은 특정 정치인이나 이념적 집단의 행보다. 역사적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먼저 꺼냈으면서도 그것에 대해 지적을 하면 색깔론이라고 맞서고 있다. 특정한 이념적 성향을 이유로 개인의 자유를 압박하거나 박탈하는 것이 색깔론이지, 대한민국의 정체성 문제를 지적하고 토론하는 일이 어찌 색깔론이 될 수 있겠는가. 민주화가 달성된 대한민국이다. 아직까지도 색깔론의 피해자인양 행동하는 그들이 대한민국을 색안경 끼고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정치인들의 역사 인식은 중요한 문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인사나 정치세력이 대한민국 헌법을 존중할 리 없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에 대한 왜곡과 부정적 이미지 확산, 한일관계의 정치적 악용, 그리고 북한 정권에 대한 도를 넘는 호의가 모두 대한민국 정체성 인식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재명 지사의 점령군 발언으로 촉발된 대한민국의 정통성 논쟁은 다음 정부의 대외정책을 미리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헌법 질서 위에 수립되었고, 그 국민은 북한의 남침으로 인한 피해와 잿더미가 된 경제 속에서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만들어냈다. 우리의 자랑스러움을 수치스러움으로 왜곡해선 안 된다. 부끄러운 일이 있었다면 대한민국이 탄생하기 전 분열과 국제정세에 대한 무지로 인해 국권을 잃은 일이고, 한반도의 북쪽에서 벌어지는 반 인권적 정부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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