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반도체, `부화뇌동`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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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반도체, `부화뇌동` 말아야

   
입력 2021-07-19 20:00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DT현장] 반도체, `부화뇌동` 말아야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반도체 시장이 하루가 멀다하고 요동치고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1위인 대만 TSMC가 일본에 투자를 단행하면서 미·일·대만 간 반도체 동맹이 더 견고해졌다. 종합반도체 세계 1위로 미국 반도체의 자존심인 인텔은 파운드리 시장 진출을 위해 글로벌 톱5 업체인 글로벌파운드리를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왔다.


라인 하나 만드는 데 조 단위의 투자금액이 들어가는 대형 장치산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 시장의 움직임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과 미·중 무역전쟁이라는 국제정세 요인이 반도체 시장의 판도를 흔들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장 변화는 한국 반도체의 대표주자인 삼성전자를 압박하고 있다. 삼성 역시 10년 내 비메모리 부문 세계 1위 달성을 위해 파운드리를 유력 후보군으로 점찍었고, 지난 5월 미국 내 신규공장 투자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 투자설이 나온 지 반년 여가 지났음에도 삼성전자는 여전히 부지 선정을 결정짓지 못 하고 있다. 텍사스 중부지역에 짓는다는 소문이 있다. 메모리에 대한 선제적인 투자로 3년 전 '슈퍼사이클'의 수혜를 톡톡히 봤던 점을 고려하면, 총수 부재 리스크 때문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일견 옳은 말일수도 있지만 삼성전자 내부 상황을 보면 "마냥 투자하라"고 다그칠 만한 상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미 평택 3공장(P3)에 파운드리 라인을 준비 중에 있다. 이르면 내년 하반기 또는 2023년에는 가동할 계획이다. EUV(극자외선) 초미세 공정을 도입한 최신 라인인 만큼 당장 파운드리 수요를 소화하는 데 문제가 없다.

소위 '기싸움' 차원에서 무턱대고 투자를 할 경우 '치킨게임'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위탁생산이라는 파운드리 사업의 특성 상 외부 수주물량을 일정 수준 확보하지 못하면 공장이 놀게 된다. 24시간 연속 가동해야 하는 반도체 공정을 고려하면 공장을 멈추는 것만으로도 하루에 수백억원의 돈이 무의미하게 사라진다.

최근의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도 시장 외적인 효과 때문일 수 있다. 일례로 올 상반기 D램 등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일시적으로 한 달 사이에 두 자릿수나 치솟은 적이 있었다. 이는 미국의 대(對) 중국 반도체 압박에 선제대응하려는 중국 IT(정보기술) 업체들의 선제 재고 확보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이후 시장은 조정기에 들어갔다. 업계에서는 올 하반기도 시장 전망은 밝지만, 폭발적인 성장보다는 안정적인 우상향 곡선을 그릴 가능성을 높게 점친다.


반도체 시장은 단기 대응이 절대 불가능하다. 잠깐의 호황을 누리려 서두르다간 오히려 이후 긴 불황의 터널을 견뎌내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추가 증설보다는 기술 우위 확보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현명한 답일 수 있다. 기술적 우위만 확보하고 있다면, 고부가가치 첨단 공정 위주의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버티지 못한 기업들이 나가떨어질 때 인수·합병(M&A)이나 신규 투자로 대응해도 된다.

격변하는 시장 흐름 속에서 유일하게 생존을 담보하는 것은 '기술력' 하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임기가 2~3년에 불과한 전문경영인보다 10년 이상을 내다볼 수 있는 총수가 더 유리하다. 가보지 않은 길에 이르더라도 가야 할 방향만 정해졌다면 '좌고우면'(左顧右眄)할 필요가 없고 '부화뇌동'(附和雷同)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정해진 계획대로 무사히 간다면 한국 반도체의 위상은 미래에도 튼튼할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소위 시장을 진정시킬 '슈퍼스타'의 역할이 필요하다. 임직원들의 불안감을 달래고, 미국 등 각국 정부와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기업을 대표하는 총수의 책임 있는 한 마디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정부를 비롯해 언론 등에서 삼성전자에 가하는 대내외 투자 압박은 한편으로는 아쉽기까지 하다. 반도체가 국가 경제에 차지하는 위상 등을 고려하면 단 한 번의 '실기'(失機)'가 몰고오는 파장은 상상 이상이다. 그럼에도 불안하다면 총수에게 책임질 수 있는 메시지를 직접 들으면 된다. 당분간 반도체에 대한 한국경제의 의존도는 상당할 수 밖에 없는 만큼, 경제와 일자리를 위해 한번 고민해 볼 만한 사안이다.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comja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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