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공정과 정의, 구성원들의 성찰이 먼저다

메뉴열기 검색열기

[포럼] 공정과 정의, 구성원들의 성찰이 먼저다

   
입력 2021-07-20 19:51

류상영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포럼] 공정과 정의, 구성원들의 성찰이 먼저다
류상영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공정과 정의라는 두 단어가 현재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이 두 단어는 모든 사회적 가치를 압도하고 있다. 민주화가 공고화되어 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왜 이렇게 공정과 정의가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였을까? 이 두 가지 개념이 한국의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설계하는데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리고 과연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현재 한국 사회는 공정과 정의를 둘러싼 갈등이 폭증하고 있다. 세계화의 경쟁 속에서 경제성장의 속도가 느려지고 정치경제적 불평등이 확산되었다. 민주화의 진전으로 사회 각 구성원들은 더 이상 '무지의 베일'이 제대로 작동할 것으로 믿지 않음과 동시에 각자가 그 속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계층, 지역, 세대, 젠더, 직종 등 모든 분야에서 소위 집단행동의 딜레마가 나타나고 있다.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 환경과 제도를 설계하기 위하여 치열하게 경쟁하고 싸우고 있다.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공정과 정의를 외치고 있다.
무엇이 공정이고 정의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래에 제기되는 질문들은 어느 하나 쉽지 않다. 보편 복지와 선별 복지 중 무엇이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인가? 여성 할당제 등 각종 우대정책은 공정한가? 정부에서 걷는 세금은 정의로운 것인가? 실력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인가? 회사에서 사장이 종업원의 수십 배의 급여를 받는 것은 공정한 것인가?

문재인 정부가 추구한 주요 정책들은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성공적이지 못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정규화 사례는 과정으로서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경우이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동일한 대우를 받아야 절차적 정의와 분배적 정의 모두를 충족시킬 것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은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환 과정에서 적용되어야 할 공정한 경쟁의 절차가 결여되었다. 대통령의 과도한 정치적 약속 때문에 실력을 검증할 평등한 기회는 없어지고 운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오랫동안 취업을 준비해온 젊은 세대에게 좌절과 분노를 일으켰고, 젊은 세대 내부에 노-노 갈등만 부추기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최근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세금문제는 오래전부터 평등, 공정, 정의 등에 관한 철학적 정치적 논쟁의 단골 소재였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할지 사회적 책무를 중시할지에 따라 재산권과 세금을 보는 생각은 다르다. 하지만, 대체로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고, 세금의 액수는 지불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는 논리가 국제적으로도 사회적 합의를 얻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세금은 시민적 책임과 사회적 공헌의 척도로도 여겨지며, 사회통합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수단으로도 비쳐진다. 하지만, 현 정부는 세금을 징벌적 수단이나 표를 얻기 위하여 진영을 나누는 손쉬운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받고 있다. 이 사례는 어설픈 규제와 정책적 무능력이 공정과 정의를 훼손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 과연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 결국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이익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라는 전통적인 철학적 질문이 다시 제기된다. 그리고 실력과 운에 대하여 어떤 황금률을 만들고, 어떤 경쟁을 촉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제도설계만으로는 불가능하며 각 구성원의 성찰과 노력,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할 경제적 여건과 정책적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경제적 파이가 줄어들고 미래가 불안해질수록 공정과 정의에 대한 합리적인 논쟁의 장이 좁아질 것이다. 자기의 성공과 남의 실패는 실력 탓이고, 나의 실패와 남의 성공은 운 탓이라는 분열적 사회현상이 조성될 수 있다. 이럴 때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이익의 조화는커녕,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공적 미덕과 선의의 신뢰 함양을 위한 모든 구성원들의 성찰과 참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문=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162호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