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100년 전 여름은 왜 그렇게 더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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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100년 전 여름은 왜 그렇게 더웠을까

   
입력 2021-07-20 18:54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100년 전 여름은 왜 그렇게 더웠을까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유례없는 무더위로 단수에 온열질환 속출
길 가던 소 졸도하자 얼음 마사지 진풍경

길 바닥 잠 일쑤… 늑대에 뜯기는 사고도 기상이변, 가장 약한 사람이 피해 보더라

50도에 육박하는 사상초유의 폭염으로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800여 명이 돌연사했다고 한다. 게다가 산불과 폭우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 역시 폭염과 열대야가 급습하면서 여름 지내기가 여간 고통스런게 아니다. 100년 전 우리나라의 여름 모습도 이랬었을까. 그때를 찾아가 본다.

1921년 8월 16일자 매일신보에 '불원(不遠) 주간(晝間) 단수(斷水)까지'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인다. "거의 100도(섭씨 38도)나 가깝게 된 더위는 금년에 이르러 처음 당하는 일이요, 갑자기 더위로 인하여 물의 남용(濫用)이 더욱 심해져서 경성의 수도는 저수지가 말라 들어가서 오죽하면 야간 단수를 한 터이지만, 이제 낮에도 제한하는 수밖에 별수단이 없게 되었다. 급수 제한이란 것은 이미 문명도시로는 크게 치욕되는 일인 즉, 삼가서 남용하지 않기를 주의할 일이더라."

100년 전에도 한반도에 유례없는 무더위가 찾아왔었다. 폭염은 물 부족을 초래했다. 이런 물 부족은 경성뿐 아니라 평양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평양에선 대대적인 물 절약 캠페인이 벌어졌다. "평양의 수도(水道)는 지금 일일에 두 번씩 단수하여 당국에서는 별반 수단을 다하여 물의 절약을 선전하며, 지난 18일에는 평양의 학교 생도 1600여 명이 물 절약을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는데, 생도들은 손에 오색이 찬란한 기(旗)를 흔들며, 수천 매의 선전지를 뿌리면서 시중을 연보(練步; 줄지어 힘차게 걷다)하여 최대한 물의 절약을 선전한 후, '시민 만세'를 삼창(三唱)한 후 대성공 속에서 산회하였다." (1921년 7월 20일자 매일신보)

덩달아 온열질환자도 속출했다. 1921년 8월 16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서열(暑熱; 찌는 듯한 더위)로 졸도'라는 제목의 기사다.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아현북리 34번지 박영진의 넷째 딸 순정(舜政, 9)은 지난 13일 오전 11시 40분경에 경성 죽첨정 3정목 경관파출소 옆을 지나가는데, 타는 듯한 혹서(酷暑)로 인하여 병이 생겨 갑자기 졸도하므로, 즉시 그 파출소는 응급치료를 하여 일시 인사불성에 이르렀었으나, 마침내 소생이 되었으므로 서대문경찰서에서는 그 부친 되는 사람을 불러다가 인도하였다는데, 그곳은 언덕배기로 3,4일 전에도 모(某) 군대의 군인 두 명이 행군 중 일사병(日射病)으로 졸도한 일이 있다는데, 그곳을 통행하는 사람은 주의할 일이요."



더위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악재였다. 같은 날 매일신보의 기사다. "동대문 관내에 황소 한 마리가 무거운 짐을 싣고 가다가 마전다리쯤에서 더위로 졸도한 것을, 얼음 같은 것을 소의 배 위에 올려놓고 별별 치료를 다 하였으나 마침내 죽어버렸고, 짐승들이 턱턱 자빠져 어쩔 줄을 모르는 요사이 더위처럼 지독한 더위는 다시 없겠다 하겠더라."
폭염과 함께 전염병 대비도 중요한 과제였다. 1921년 6월 10일자 조선일보에는 "작년 여름 호열자(虎列子; 장티푸스)가 가장 유행했던 용산의 이촌동과 충신동에 검변(檢便; 대변검사)을 실시한다"는 기사가, 같은 해 8월 2일자 동아일보에는 "경성 시내에서 방매(放賣)하는 청량음료에 부패한 것이 많아 경찰편에서 간상배(奸商輩)를 단속하기로 했다고 한다"는 기사가 각각 눈에 띈다. 당시에는 어린 아이들이 참외 껍질 같은 것을 주워 먹는 일이 많아 '참외 껍질 주워 먹지 않도록' 주의시키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100년 전 여름은 왜 그렇게 더웠을까
100년 전 여름에는 에어컨도 없었다. 그러니 그 무더운 밤을 어떻게 지냈을까? 당시 기사를 보면 여름이 되면 이부자리 한 폭도 없이 그늘나무 밑이나, 자기 집 마당에서 잠을 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특히 부산 지방에선 모기, 빈대, 벼룩이 많아 여름철이 되면 남녀를 불문하고 길가에서 자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 따른 사건·사고도 많이 발생했다. "부산부 대신동 정영서(鄭永瑞)의 처(妻)는 이달 4일 날 자기 집 마당에서 어린 아이를 데리고 잠을 자다가 늑대 한 마리가 와서 허벅다리를 물어서 중상(重傷)이 된 고로, 지금 부립병원에서 치료하는 중이라더라."(1921년 8월 10일자 매일신보)

무더위를 잠시 잊기위해 장춘단에선 불꽃놀이 대회가 열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서대문 밖 악박골(종로구 현저동) 약물터에는 시원한 약숫물 먹으러 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침부터 서대문으로 나가는 전차는 모두 만원이었다. 1박 2일로 원산을 다녀오는 납량열차(納凉列車)가 운행됐고 2000여 명의 해수욕단을 모집해 인천 월미도로 단체 피서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뱃놀이, 천렵(川獵; 냇물에서 고기잡이를 함)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한 여름의 유희였다.

반면 무더위에 장사 하느라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1921년 7월 21일자 매일신보에는 '서중(暑中; 여름 더운 때)의 고생살이 직업'이란 제목으로 아이스크림 장사의 슬픈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나는 차디찬 음식을 가지고 삼복(三伏) 염서(炎署) 중에 땀을 철철 흘리며 경성 내외를 돌아다니며 염천(炎天) 생활을 하는 '아이스크림 장사'올시다. 공원 같은 데, 색주가 집 같은데나 내외술집을 돌아다니며 허기진 목청을 돋아 아이스크림을 외칠 적에 문득 생각을 해보니 세상만사가 무비(無非; 모두) 일장춘몽(一場春夢)이요, 또한 뜬구름 같은 이 세상 사람의 살림살이올시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으로 인한 폭염, 폭우, 홍수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쳤다. 문제는 가장 약한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풍선을 누르면 가장 약한 곳이 먼저 터지는 것처럼 말이다. 100년 전 아이스크림 장사가 말했다. "세상만사가 생각을 하면 모두 일장춘몽"이라고. 세상사 일장춘몽임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어차피 꿈같은 세상사, 어려움을 나눠 갖는 그런 마음이 생길 것이 아닌가. 모두가 대동(大同)하는 사회가 혼자만 꾸는 '한여름 밤의 꿈'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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