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팬데믹에도 올림픽 열린 의미는?

박영서기자 ┗ [사설] 빌라도 13년만에 최대급등, 당장 효과 낼 공급책 화급하다

메뉴열기 검색열기

[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팬데믹에도 올림픽 열린 의미는?

박영서 기자   pys@
입력 2021-07-22 13:17
[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팬데믹에도 올림픽 열린 의미는?
도쿄 올림픽이 우여곡절 끝에 막을 올렸다. 코로나19 창궐로 취소 또는 재연기 주장이 잇따랐지만 올림픽의 시계는 예정대로 개막을 향해 돌아갔다. 여전히 우려감이 높지만 올림픽 정신을 생각한다면 도쿄올림픽은 모두에게 중요할 것이다. 요즘 같이 힘든 코로나 시대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고대 올림픽과 근대 올림픽=고대 올림픽은 기원전 776년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올림픽은 일종의 종교행사였다. 올림피아는 제우스신의 성지였고, 올림피아에서 벌어진 경기는 제우스신에게 바치는 것이었다. 대회 기간 내내 신전에 '성화'가 켜졌다.
고대 올림픽은 4년마다 열리는 범그리스 축제였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간에는 전쟁이 만성적으로 벌어졌지만 올림픽이 열리면 '에케체이리아'(ekecheiria·성스러운 휴전)라는 휴전기간을 마련했다. 전쟁 중이라도 올림픽이 열리면 일시 휴전해 참가해야 했다. 성대한 제전은 전쟁과 전염병으로 공멸될 뻔했던 도시국가 전체를 살려냈다.

그리스가 로마제국의 지배에 들어가고 서기 392년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정해지면서 고대 올림픽은 서기 393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1500여년 뒤 프랑스의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근대 올림픽이 생겼다. 교육가였던 쿠베르탱은 인간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육체와 정신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세계 각국을 둘러본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이 스포츠로 소통하는 국제적인 행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고대 올림픽을 본뜬 경기 축제를 구상했다. 1896년 제1회 대회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렸고 대성공으로 끝났다. 이후 올림픽은 전 세계인들의 축제가 되었다.

◇현재의 올림픽과 다른 점은=고대 올림픽은 현재의 올림픽과 몇가지 다른 점이 있다. 첫째, 고대 올림픽 출전자들은 벌거벗고 경기했다. 말 그대로 알몸 인지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맨몸에 올리브 기름을 바른 번들번들한 몸의 젊은이들이 뙤약볕에서 경기를 했었다.

둘째, 참가 제한이 있었다. 출전자는 폴리스 자유 남성시민으로 한정됐다. 여성의 경기 출전은 허용되지 않았다. 미혼 여성만 경기장에 입장할 수 있었고, 기혼 여성은 관람이 허용되지 않았다. 남자의 맨 몸을 여성이 바라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탓 같다. 우승자는 올리브 관을 썼고, 대리석 조각품의 모델이 됐다.

셋째, 당초 경기 종목은 한 종목이었다. 기원전 776년 제1회부터 제13회까지 경기는 191.27m를 달리는 '스타디온' 한 가지밖에 없었다. '가장 빨리 달리는 사람이 누구인가'가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최고 관심사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후 중장거리, 5종 경기(달리기,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멀리뛰기, 레슬링), 종합 격투기, 전차 경주 등이 추가되었다. 참고로 근대 5종 경기는 승마, 펜싱, 사격, 수영, 크로스컨트리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고대 올릭픽은 모두 개인경기 뿐이었다. 단체경기는 없었다.

넷째, 고대 올림픽은 그리스인이 만든 그리스인을 위한 올림픽이었다. 하지만 근대 올림픽은 전 세계 사람들의 올림픽이다. 국적, 종교, 이념, 문화 등 다양한 차이를 넘어 우정, 연대감,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서로 이해함으로써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들겠다는 것이 근대 올림픽 정신이다.


◇100여년 전에도 팬데믹 극복한 올림픽 있었다=도쿄 올림픽은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속에서 막을 올렸다. 100여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올림픽이 있었다. 1920년 29개국, 약 2600명이 참가한 제7회 앤트워프 올림픽이다.

1914년 7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독일 베를린은 이미 1916년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었다. 새 스타디움도 건설돼 독일 황제 겸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2세의 면전에서 낙성식도 열렸다. 하지만 전쟁이 이어지면서 근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대회가 취소됐다.

전쟁이 끝나고 올림픽 개최지로 벨기에 앤트워프가 선정됐다. 올림픽을 평화회복의 상징적 행사로 삼고자 했던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전쟁 피해가 컷던 벨기에를 선택했다. 하지만 벨기에 항구도시 앤트워프에는 전쟁과 스페인 독감의 아픈 상처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4000만명 이상을 사망케한 스페인 독감은 아직 가시지도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준비 기간은 불과 1년이었고 재정도 부족했다. 경기장 정비도 충분치 않았다. 그럼에도 대회는 열렸다. 5대륙의 단결을 보여주는 오륜기 게양, 선수 선서, 평화의 상징으로 비둘기를 날리는 것, 이 세 가지 개회식 세리머니는 모두 이 대회부터 시작됐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1년 연기된 끝에 결국 무관중 대회로 개막한 도쿄 올림픽은 100여년 전 인류를 위협했던 스페인 독감 대유행 속에 치러졌던 앤트워프 올림픽을 떠올리게 만든다.

◇코로나로 갈라진 세계, 올림픽이 이어야=고대 올림픽의 시작도 전쟁과 역병으로부터의 부흥이었다. 1920년 앤트워프 때는 그랬다. 세월이 흐른 뒤 2021년 도쿄 올림픽 역시 역병을 이겨내는 숙명의 올림픽이 됐다.

근대 올림픽이 IOC와 일부 정치인, 스폰서 업체 등의 돈벌이 수단이라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팬데믹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고립과 고통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올림픽이 절실히 필요한 때일 것이다. '연대'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자리가 바로 올림픽이다. 코로나로 갈라진 세계를 올림픽이 이어야 한다. 이것이 올림픽 정신이다. 도쿄 올림픽에서 이런 이상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논설위원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