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호 칼럼] 모든 몰락에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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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호 칼럼] 모든 몰락에는 이유가 있다

박선호 기자   shpark@
입력 2021-08-23 19:08

박선호 편집국장


[박선호 칼럼] 모든 몰락에는 이유가 있다
박선호 편집국장

"나라가 춘궁기 농민들에게 낮은 이자로 쌀을 빌려주고, 추수기에 갚도록 한다." 중국 북송 왕안석(1021~1086)이 내놓은 청묘법(靑苗法)이다. 불과 100년 전 이 땅에도 봄이면 '보릿고개'라는 게 있었다. 가을 추수했던 곡식이 겨울을 지내면서 떨어져 서민들이 먹을거리가 없었던 배곯는 시기의 이야기다.


약 900여 년 전 왕안석은 이 보릿고개를 이겨낼 아이디어를 내놨다. 나라의 곡식을 풀어 빌려주고, 가을 추수를 해서 갚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누가 봐도 훌륭한 계획이었다. 혁신적인 것만 따지자면 오늘날 "원하는 국민 모두가 싸게 살 수 있는 공공 임대주택을 짓겠다"는 현 정부의 정책 아이디어가 따라갈 바가 아니다.
북송의 제6대 황제인 신종(1048~1085)도 그리 생각했다. 적극적으로 왕안석의 개혁을 지지했고 이를 추진했다. 그럼 당시의 많은 서민들의 삶이 행복해졌을까? 아쉽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왕안석의 청묘법은 철저히 실패했다. 이 실패는 왕안석의 다른 개혁마저 발목을 잡았다. 오늘날 한국의 적지 않은 이들이 이 왕안석의 실패를 '기득권의 반발' 탓으로만 돌린다.

과연 그럴까? 중국 사료는 좀 더 솔직하다. 왕안석의 실패에 대해 '현장 운영 능력 부족'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청묘법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반발하는 기득권 탓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오늘날 금융 전문용어로 '신용의 문제'가 있었다. 춘궁기 쌀을 빌리려는 백성들의 신용을 하급관료들이 믿지 못한 것이다.

하급관료들은 추수기 빌려줬던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아야 할 책임이 있었다. 부실이 생기면 그 책임을 자신이 떠안아야 했던 것이다. 하급관료들은 요즘으로 치면 '위험 헷지'에 나섰다. 다섯 가구를 묶어서 서로 보증을 서도록 했다. 이자도 무려 연 20%에 달하는 '고금리'였다.

중국 사료에 따르면 청묘법의 쌀 대출은 그나마 빈민에게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았다. 최소한의 상환 능력을 갖춘 중산층 이상 가계를 주대상으로 이뤄졌다. 정작 청묘법의 도움이 필요했던 빈민들은 이 중산층 부자들에게 더 높은 금리를 주고 쌀을 빌려야 했다. 요즘으로 치면 제도 금융권에서 쫓겨난 서민들이 불법사채를 쓰는 꼴이었다.


사채업자가 못 됐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요즘 서민은 글이라도 읽지만 북송의 서민은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 했다. 당연히 부당 계약서들이 판을 쳤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소동파 역시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수차례 "현실에 맞춰 천천히 제대로 개혁을 진행해 달라"고 충고했지만 왕안석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쯤에서 뭔가 기시감이 든다. 현 정권은 집권 4년 내내 "기업의 입장도 고려해 달라. 이상이 아니라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 달라"는 재계의 요청에 귀를 닫았다. 왕안석의 이름에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이 오버랩 된다.

현 정부의 개혁도 왕안석의 실패를 답습하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 정책이나 최근 대출 규제조치 등은 청묘법의 데자뷔다. 서민을 위한다는 게 결국 서민을 불법사채업자들에게로 내몰고 있다. 검찰개혁부터 언론개혁까지,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두 자릿수 상승 등의 경제·부동산 정책까지, 현 정부의 거의 모든 개혁이 대등소이하다.

모든 몰락한 것들에게는 이유가 있다. 친정부 인사들은 '기득권의 저항'이라는 핑계를 찾을지 모른다. 하지만 왕안석 개혁의 실패처럼 근본적 원인은 현실과의 부조화 탓이다. 개혁안이 실제 현실에서 실행되지 못한 때문이다. 조급하게 '조장'(助長)을 하면서 뿌리를 내리려던 씨앗마저 싹을 틔우지 못하고 있다.

핑계는 위로가 될지 몰라도 대안을 만들지는 못 한다. 왕안석이 죽고 300여 년이 지나 명나라 왕양명(1472~1528)이 내놓은 조언이 새롭다. 왕양명은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아는 게 진정한 앎"이라 했다. 그런 앎만이 지행합일(知行合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경지에 이른다. 왕양명보다 앞서 살았던 왕안석은 이 말을 들을 수 없지만 문재인 정권은 다르다. 남은 1년이라도 이 도리를 깨우치길 희망해본다.

박선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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