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칼럼] `美아프간철수`가 소름돋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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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 칼럼] `美아프간철수`가 소름돋는 까닭은

이규화 기자   david@
입력 2021-08-24 19:46

이규화 논설실장


[이규화 칼럼] `美아프간철수`가 소름돋는 까닭은
이규화 논설실장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고통과 신음이 지금 한국인에게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누구처럼 "미안하다 고맙다" 할 수는 없지만 모처럼 뜨끔한 일침이다. 어떤 정부를 갖는가가 국민의 삶에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제대로 된 정치체제와 정부를 갖지 못하면 개인의 생명과 재산은 가랑잎처럼 가벼워진다. 심지어 막돼먹은 자들이 카불공항 이륙 항공기에서 추락하는 난민의 모습을 보고 '카불스카이다이빙클럽'이라고 이죽거린 것처럼 죽어서까지 조롱받는다.


아프간 관련 소식에 많은 인터넷 트래픽이 쏠리고 있다고 한다. 좀처럼 외국 일에 관심 없고 '국뽕'에 잘 취하는 한국인들인데, 뜻밖이다. 그만큼 아프간 사태가 극적이고 충격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들이 관심을 갖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아프간 파병 우리 군을 도와줬던 아프간인 400여명을 한국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했다. 여당 대표의 제안이고 미국이 해외미군부대에 일시적으로 난민을 이동시키는 문제를 놓고 한국정부와도 접촉했다니 실현 가능성이 높다.
많은 한국인들이 진심으로 아프간 상황을 우려하고 동정하는 데는 한국인의 핏속에 난민의 상흔이 패어있기 때문이다. 한국 근현대사 150년을 보면 많은 한국인은 난민이었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중엽까지 만주로 연해주로 탐관오리와 일제를 피해 이주했다. 해방공간에선 김일성의 '국유화'를 피해 남하했고 6·25전쟁 때는 대규모 피난행렬이 남으로 남으로 향했다. 50·60년대엔 입에 풀칠하기 위해 중동으로 독일로 나갔다. 우리와 아프간과는 이런 동병상련이 작동한다.

아프간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제대로 된 정부를 가지라는 것이다. 미국이 1조 달러 이상을 쏟아부었지만 행정체계 미비와 부패로 줄줄이 새나갔다. 선거는 치렀지만 승복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정통성은 인정받지 못했다. 두 번째는 국민이 적극적으로 현실 정치에 개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민주제 훈련이 부족한 국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여건이 못됐긴 하지만, 저변 개개인의 정치적 무관심은 권력이 소수 토후와 군벌의 손에 넘어가게 했고 지방과 중앙 정치가 할거하게 만들었다. 세 번째는 동서고금 너무도 평범한 진리인, 지도자를 잘 선택하라는 점이다. 초대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는 열정은 있었지만 사욕이 넘쳤고 분파적이었다. 카불이 떨어지기 직전 현금을 갖고 튄 아슈라프 가니 전 대통령은 선의를 가졌지만 통솔력이 부족하고 유약했다.



지금 한국은 어떤가. 세 가지 교훈 중 첫 번째 정부체제만 믿을 만하다. 법치와 규율로 움직이는 행정체계를 갖췄다. 이는 이승만, 이시영, 이범석 등 '건국의 아버지들' 덕이다. 그들은 민주주의 경험이 전무한 땅에 최첨단 자유민주체제를 도입했다. 만용에 가까웠지만 그럭저럭 가동됐고 박정희가 경제적 토대를 갖춰놓자 오늘의 모습으로 탄탄해졌다.
두 번째, 세 번째는 생각할 여지가 많다. 현실정치의 관심은 높지만 이성적 합리적이지 못하고 계층적 지역적 이념적 이해에 매몰된 나머지 관심을 아니 갖느니만 못하다. 아전인수에다 편협한 유권자들의 성향은 꼭 고만한 정치지도자를 출현시킨다. 물론 세계 어느 나라 유권자도 자기 이익에 부합하는 후보에 투표한다. 하지만 한국처럼 특정 계층과 지역이 특정 정당에 몰표를 주는 행태는 보이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하니 위헌적 발언과 정책을 서슴지 않는 대통령이 40% 지지율을 보이고 정부 빚이 광속으로 느는데도 모든 것을 '퍼주기'로 해결하겠다는 대선 후보가 여권 지지율 1위를 한다.

먹고 살만 하니 국민들 마음속에 어떤 괴팍하고 자기파괴적인 근성이 자리 잡은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송영길 대표는 "자기들은 핵을 가지고 있으면서 남 보고 핵을 가지지 말라고 억압하면 어떻게 되겠나"라며 북핵을 옹호하는 듯한 주장을 한 적 있다. 아프간 난민 안전만큼 국민 안전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할 소리가 아니다. 내년 대선은 문재인 정권이 훼손한 헌법적 가치를 복원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그 기회를 흘려보낸 후 닥쳐올 미래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미군의 아프간 철군이라는 백신을 맞고도 정신 못 차리면 다음은 우리 차례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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