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칼럼] 미국은 왜 아프간서 실패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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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칼럼] 미국은 왜 아프간서 실패한 것인가

박영서 기자   pys@
입력 2021-08-31 19:36

박영서 논설위원


[박영서 칼럼] 미국은 왜 아프간서 실패한 것인가
박영서 논설위원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미국 대사관은 거대한 규모였다. 직원은 현지 고용인을 포함해 무려 4000명이나 됐다고 한다. 주재국과의 외교가 주임무인 대사관 인력이 통상적으로 100명을 넘지않는 것을 보면 이례적 규모임에 틀림없다. 직원이 4000명이나 된 것은 이들이 아프간의 정치·군사·행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카불의 미 대사관은 마치 식민지에 설치한 '총독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총독부 정치'를 해서야 어떻게 민심을 장악할 수 있겠는가. 이들의 통치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탈레반의 일제 봉기가 일어나자 정권은 추풍낙엽이었다. 대부분의 주도(州都)에서 정부군은 제대로 항전하지 않았다. 지방지사부터 대통령까지 돈다발 싸들고 도망쳤다. 미국이 최소 2조2000억 달러(약 2563조원)를 들여 구축한 체제는 '사상누각'처럼 무너졌다.
탈레반이 카불에 무혈입성하자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카불 공항으로 몰려들었다. 협력자를 못 본 체하면 미국의 위신은 추락하고, 앞으로 다른 나라에서 협력자를 얻기 어려워진다. 미국은 '카불 공항 대피' 총력전에 들어갔다. 미군의 수송기가 부리나케 이들을 대피시켰다. 45분마다 한 대씩 이륙했다. 24시간 동안 1만9000명을 실어날은 날도 있었다.

베트남전쟁 마지막 날인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군 탱크가 남베트남 수도였던 사이공의 대통령궁 철문을 뚫고 들어갔을 때 연출됐던 탈출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이송이었다. 나토 및 아시아 우방의 수송분까지 합하면 카불 공항을 통해 탈출한 사람은 12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이렇게 끝나버렸다. 20년 동안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지만 탈레반은 다시 돌아왔다. 그렇다면 '헛 수고'로 끝난 아프간 침공을 미국은 왜 시작했을까. 적어도 아프간 민중의 생활 개선이나 아프간 민주화를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발단은 2001년 9월 11일 미국 본토를 강타했던 9·11 테러였다. 테러를 감행한 알 카에다는 아프간에 근거지가 있었다. 부시 행정부는 탈레반 정권이 알 카에다를 보호하고 있다고 간주, 아프간 공격을 시작했다. 탈레반에 밀려있던 '북부동맹'은 미군의 공세로 기사회생해 그해 11월 카불을 탈환함으로써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켰다.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는 북부동맹 중심의 신정권 수립을 환영하고 다양한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아프간의 치안은 안정되지 않았고 사람들의 생활도 나아지지 않았다. 정부 각료와 주요 자리는 각 군벌의 우두머리와 그 가족들이 차지했다. 아프간 재건을 위한 각국의 막대한 원조자금이 밀려들면서 부정부패 역시 극심해졌다.
반면 탈레반은 괴멸하지 않았다. 탈레반 대원들은 무기를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갔거나 파키스탄 국경 지대의 거점에 몸을 숨겼다. 2003년이 되자 유격전을 시작하면서 세력을 회복해 나갔다. 미국은 병력 증파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탈레반은 지배지역을 확대했고 미국은 수렁에 빠졌다.

그 과정에서 17만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 중 민간인 사망자는 4만7000여명으로 추정된다. 전쟁 중 국외로 빠져나간 난민은 260만명에 달한다. 여성들의 피해가 컸다. 남편, 자녀, 부모, 형제, 자매를 잃은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누가 이겼던 간에 오랜 전쟁이 끝난 것을 축하하는 여성이 아마도 상당히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이 철수를 완료하면서 20년 아프간 전쟁은 종지부를 찍었지만 미국은 체면을 구기게 됐다. 어린아이 손목 비트는 것 같은 전쟁이었지만 전면 철수함으로써 국제적 위신은 떨어졌다. 한국전쟁 이후 걸프전 빼고 주요 전쟁서 모두 패배한 셈이 됐다. 물론 아프간 철군이 미국에 치명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최대 군사대국이고, 월가가 버티고 있고, 강력한 하이테크 기업을 보유한 나라인데다 자국 언론의 세계적 영향력도 크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프간 전쟁에서 손을 떼고 대(對)중국 전선에 전력을 쏟는다는 방침이다. 그에 앞서 미국은 지난 20년 동안 무엇을 잘못했는 지를 제대로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배울 것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애당초 미국의 아프간 공격에는 '정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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