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언론중재법이 여전히 문제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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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언론중재법이 여전히 문제인 이유

   
입력 2021-09-05 19:49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언론중재법이 여전히 문제인 이유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지난 2005년 미 뉴욕타임스(NYT) 주디스 밀러 기자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비밀요원 이름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 비밀요원은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WMD) 제조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파견된 요원이었다.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었던 WMD와 관련됐기에 미 정부에서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밀러는 비밀요원 신원 공개를 금지한 연방정부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밀러는 CIA 비밀요원의 신원을 알려준 정보원을 밝히라는 법원의 요구를 거부, 법정모욕죄로 85일간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취재원 보호를 인정하는 '방패법'(Shield Law)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성직자가 자신에게 고해성사한 살인자를 경찰에 신고한다면 어떠한 범죄자도 성직자를 믿고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을 것이다. 비슷하게 의사에게도 환자의 병에 대해서 함구할 의무가 따른다. 의사가 환자의 병을 여기저기 떠벌린다면 이를 두려워 치료를 꺼리는 환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기자에게도 취재원 보호는 하나의 직업윤리다. 언론보도의 진위가 의심받고 언론사에 징벌적 배상책임을 묻는다면, 언론사는 취재 과정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 취재원 신원을 밝힐 수밖에 없다. 그러면 결국 기자와 취재원과의 신뢰관계는 무너지고 언론을 통한 공익적 내부고발은 사라질 것이다.

야당과 언론단체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친 더불어민주당은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이달 27일로 연기했다. 여·야 합의로 새로운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는 하지만 합의를 기대하는 사람은 솔직히 그리 많지 않다. 한달만에 합의를 도출할 내용이었다면 그렇게 무리하게 추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달동안 노력했다는 최소한의 구실을 바탕으로 민주당 원안대로 강행 처리될 가능성만 높아졌다. 하지만 이 법이 통과된다면 방패법이 없는 국내 언론의 취재원 보호 원칙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민주당내 일부 의원들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조·중·동 등 메이저언론사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는 이들 거대 언론사들보다는 중소 언론사와 지역 언론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히게 된다.


연 매출 3000억원 이상의 지상파와 종편 방송사, 조선-중앙-동아-한국경제-매일경제 등의 거대 언론사들은 변호사 고용 및 계약 등을 통해 법률적인 '게이트키핑' 과정을 추가할 수 있다. 하지만 연 매출액 100억원 이하의 지역 언론사로서는 변호사를 고용하거나 자문계약을 체결하기도 쉽지 않다. 변호사 자문을 위해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 취재기자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될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의 실질적인 타깃은 중소언론사, 지역언론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자칫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인 지역 언론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민주당에게만 유리하다고 여긴다면 민주당의 착각이다. 야당인 국민의힘 주장대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이후 비판을 막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어봤자 2~3년 진실을 가릴 뿐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하나의 불문율처럼 보수-진보는 10년을 주기로 권력을 번갈아 잡아왔다. 문 정부 출범 5년만에 재집권 전망마저 이미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해찬 전 민주당 당대표의 말처럼 민주당 20년 연속 집권은 불가능하다. 결국 국민의힘 등 보수 정권도 이 법을 언론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다.

지난 2008년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보도는 국내 언론의 최대 오보중 하나로 꼽힌다. 보도내용 중 일부가 허위사실에 근거해서 광우병 위험성을 왜곡, 과장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당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과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가속화시켰다. 2011년 대법원도 일부 보도 내용이 사실과 어긋났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국민 먹거리와 관련된 보도의 공공성을 고려해서 명예훼손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만약 민주당의 현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당시에 있었더라면 MBC는 이미 문을 닫았을 지도 모른다. 당시 MBC의 보도가 적절한가와는 상관없이 언론으로서 MBC의 보도는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이는 내 생각과 같거나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언론으로서 권력을 감시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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