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인호 칼럼] 달의 몰락과 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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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인호 칼럼] 달의 몰락과 멋진 신세계

우인호 기자   buchner@
입력 2021-09-07 19:33

우인호 전략기획국장


[우인호 칼럼] 달의 몰락과 멋진 신세계
우인호 전략기획국장

뭉클한 무엇이 식도를 타고 올라온다. 역류성 감동이다. 10~20대 때도 헤비메탈을 듣지 않았다. '시끄럽고 지저분'해서다. 때아닌 감동은 최근 JTBC 슈퍼밴드2에 출연한 크랙샷이 '달의 몰락'을 부를 때 찾아왔다.


정통 헤비메탈을 수 년째 우직하게 지켜온 4명의 멤버로 구성된 밴드다. 감성 발라드를 '순수한' 메탈 곡으로 바꿔 부를지는 상상도 못했다. 심사위원이자 원곡자의 친구인 윤상이 "이 기쁜 소식을 (친구 김현철에게) 빨리 알리고 싶다"고 했을 정도다. 기괴한 듯 찢어지는 보컬의 고음, 화려한 일렉 기타의 변주와 폐를 울리는 베이스 현의 떨림, 메탈의 정석 같은 드럼. 시계 태엽을 3분만에 30년을 감아버린다.
개인적으론 '달의 몰락'을 30년 전 병역의 의무를 수행할 때 처음 들었다. "'달의 몰락'이라고 있어, 노래 끝내줘" 선임의 소개는 간단했다. 누가 작사, 작곡 했는지, 누가 불렀는지도 몰랐지만 제목부터 강렬했다. 달과는 언어적으로 조금 비껴나 있는 '몰락'이란 단어를 접목해 강렬한 감정이입을 가능하게 만든다.

찾아 듣게 된 '달의 몰락'은 "끝내줘"라는 설명과는 결이 다른 서정적인 노래였다. 90년대 초반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감성을 가진 곡이었다. '빅브라더'의 통제를 받는 군 생활을 하던 중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감동은 배가됐다. 그 곡을 만들고 부른 이는 '춘천 가는 기차'를 만들고 부른 사람이었다. '소년 음악 천재' 김현철의 발견이기도 했다.

여자 친구와 헤어진 20대 초반 남자의 감성이 달에 비춰지면서 '몰락'이라는 다소 무겁고, 과장되고 어울리지 않는 단어로 표현되어 그 절절함을 극한으로 가져간다. 동서고금, 달을 소재로 한 시(詩)는 달이 지구를 공전한 횟수만큼 많겠지만 이런 심상은 드물지 않나 싶다. 달의 이지러지고 차는 모습에 따라 회한과 그리움, 기복과 바람, 초월과 냉혹을 이미지화 하던 기존의 시와는 심상이 다르다. 청년의 자잘한 애상이 서정적인 멜로디를 타고 거대한 '달의 몰락'과 만나 새로운 심상을 만들어냈다.



'달의 몰락'을 다시 본 것은 15년도 더 지나서다. 웹젠이라는 게임회사에서 만든 '헉슬리: 더 디스토피아'라는 다중접속 슈팅게임에서였다. 아이와 조금이라도 공감하려는 마음에서 이냥저냥 알게 된 게임이다. 게임 속 세계관에서 달은 몰락했다. 반쪽은 지구로 떨어져 재앙이 됐고 남은 반도 온전한 달과는 다른 영향을 미치며 지구 생태계를 교란한다. 헉슬리 박사가 만들려고 했던 유토피아가 실패하면서 지구는 디스토피아가 됐고, 기존 인류인 '사피엔스'와 신 인류인 '얼터너티브'간의 처절한 전투가 펼쳐진다는 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었다.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해 서비스가 일찍 종료됐지만, 달의 몰락과 이로 인한 지구 생태계 파괴라는 배경과 스토리 라인은 꽤 인상적인 게임이었다. 흥미로웠던 건 전면에 '헉슬리'라는 이름을 등장시킨 부분이었다. 게임 속 헉슬리 박사는 아마 '멋진 신세계'를 쓴 올더스 헉슬리를 오마주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영국의 천재적 지성, 올더스 헉슬리는 1930년대에 '멋진 신세계'라는 소설을 통해 디스토피아적 미래 사회를 묘사했다. 지금의 한국 사회를 비춰볼 때 전율이 느껴질 만큼 기시감이 든다. "정보사회에서는 모든 정보가 공개되는 가운데 외려 리틀 브라더들이 국민을 감시하고, 국가는 투명한 척 뒤로 빠지고 시민들끼리 서로 감시하게 만들거든요. (중략) 요즘 정치 팬덤의 극성들, 다들 경험하고 계시겠지만."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공저로 참여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의 첫장 제목이 '뉴노멀! 멋진 신세계가 열렸다'인 이유는 통제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고 믿으며 통제를 비판하는 동료 시민에게 칼날을 들이미는 '극성'이 설치는 멋진 신세계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끝장나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달은 태양처럼 강렬하게 통제하지 않는다. 은은한 그리고 통제인 듯 통제 아닌 그런 통제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높일수록 지지율은 올라가는 '마법'처럼 말이다. 문득 크랙샷의 '달의 몰락'을 다시 듣고 싶다.

전략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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