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각각] 도심고밀도개발도 대장동 특혜式이면 대박

입력 2021-09-24 06:21

인허가 속전속결, 걸림돌 제거 배울점
이익 특정인 귀속 않도록 N분의1 분배
건축적 미학과 주거공간 혁신 모델 돼야

개똥도 쓸데가 있다더니 부패 냄새가 진동하는 성남 대장동 택지개발 특혜의혹 사건도 도심공공주택개발에 적잖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정부의 스물다섯 번째 부동산대책인 2·4주택공급방안은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을 통한 도심 주택공급이 핵심이다. 집값폭등 사태는 수도권, 그중에서도 서울에 주택공급이 부족한 게 원인인데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은 도심에 공급을 대대적으로 늘리기 위한 계획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민간 재건축·재개발을 규제로 꽁꽁 묶어놓은 상태에서 이 사업이야말로 현재로선 도심에 대규모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업이다.

도심공공주택개발사업은 역세권, 단독·빌라가 밀집한 저층 주거단지, 준공업지역 준거주지를 개발하는 사업으로 정부는 총 19만 6000가구를 공급한다는 방안이다. 서울에서만 11만 7000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공공주택특별법을 마련해 지난 2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국토부는 현재까지 서울 44곳을 포함해 전국 56개 지역을 후보지로 선정했다. 그 중 13곳은 이미 주민 3분의2의 동의를 얻은 상태다. 이들 지역은 예정지구에서 본지구로 지정되기 위한 주민동의율을 이미 확보한 셈이다.
그러나 국토부는 이달 예정했던 예정지구 지정 발표를 다음 달로 연기했다. 공공주택특별법 마련이 늦어져 지난 21일에야 시행이 들어간 이유도 있지만, 예상 밖 주민 반대라는 복병을 만났기 때문이다. 소수이긴 하지만 56곳의 후보지 가운데 30곳 가량에서 후보지 지정 철회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상당수 후보지 지역의 주민들이 용적률 상향 등 정부가 제시한 당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민간재개발이 사업성이 높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업을 성공시켜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주민들의 여론 추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정인 이익 독점만 아니면 '대장동 특혜 개발방식'이 정답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이 용적률 상향, 인허가 신속처리, 분양주택 수 증대라는 인센티브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곳에서 저항에 부딪히자 사업자에게 천문학적인 이익을 남긴 성남 대장동 택지개발 특혜 의혹 사건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린다. 똑같은 '특혜사업'인데 한 곳에서는 어쨌든 대성공을 거두고 다른 쪽에서는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장동 게이트'의 핵심은 신속한 주민동의와 저렴한 토지수용, 공공이 일사천리로 진행한 인허가, 이익의 사업자(민간) 귀속에 있다. 공공은 온갖 편의를 다 봐주고 민간은 이미 확보된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서둘러 사업을 진행했다.

대장동 게이트는 10년 걸린다는 재개발 사업을 성남시가 나서서 걸림돌을 속전속결 처리함으로써 기간을 3~4년으로 단축했다. 외양은 공공개발이었지만 속내는 민간개발방식으로 시행사에게 전권을 줬다. 그럼에도 가장 어려운 과정 중 하나인 '땅작업'(토지수용)에서는 공권력을 동원해 쉽게 풀어줬다. 공공과 민간이 절충된 하이브리드 개발방식이 빛을 발한 것이다. 단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대장동은 토지의 저가 강제수용이라는 토지주의 희생이 따랐다. 물론, 도심공공주택사업은 토지주들이 사업에 참여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발생할 우려는 없다. 토지주와 원주민들의 권리와 생존권이 무시돼선 안 된다는 점은 항상 유념해야 한다.

대장동 개발의 결정적 문제점은 천문학적인 개발이익이 소수의 특정인들에게 돌아갔다는 점이다. 불공평하고 위법성까지 있는 이러한 요소만 제외하면 성남시 대장동 택지개발사업은 열거한 것처럼 벤치마킹할 부분이 많다. 여기서 특히 주의할 점은 개발이익의 소수 편취가 아닌 공평한 배분이다. 모든 참여자들, 토지주·사업자·시공사 심지어 국토부나 지자체 등 공공까지 포함해 사업에 기여한 비례에 따라 N분의1로 나누는 '공평한 개발'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은 토지주들에게는 매력적인 요소가 많은 사업이다. 정부가 자신감을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도 일부 반대 움직임이 확산하는 까닭은 '공공'이란 이름에서 오는 미심쩍음에 있다. 보통 공공개발사업은 토지를 수용한 다음 이익은 공공으로 귀속한다. 토지주들이 민간개발을 선호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번 사업은 정부가 마음먹고 이익을 토지주들과 공유하겠다고 약속했다. 국토부는 서울 43곳의 수익률을 계산해본 결과, 용적률은 민간개발에 비해 83%포인트, 주택수는 1.4배, 그에 따른 주민 수익은 27%포인트 늘어난다고 밝힌 바 있다. 민간재개발에 비해 분담금을 낮출 수 있다는 점도 부각했다.

그러나 후보지 토지주들은 여전히 반신반의 중이다. 국토부가 구체적인 용적률 상향 폭과 예상되는 분담금 수준을 아직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다음 달 후보지 지정 발표 후 2차 사업설명회 때 발표한다는 일정을 제시했다. 정부는 공공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특정인의 이익 독점 같은 불법성을 걸러낸 대장동 개발사업의 '성공'를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판에 박힌 공공주택 버리고 싱가포르 '인터레이스'에서 배워야

또 정부가 유의할 점은 판에 박힌 아파트 개념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건축적 디자인에서 '성냥갑'을 탈피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참고해야 할 모델이 싱가포르의 '인터레이스'(interlace, 꼰다는 의미) 아파트단지다. 2014년 완공된 인터레이스는 2015년 '올해의 건축물'(Building of the Year)로 선정될 정도로 건축적 세련성과 미감(美感)을 지녔다. 대표적인 세계적 공공주택 디자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세계적 건축가 렘 콜하스 등이 설립한 네덜란드의 건축설계사무소 OMA(Office for the Metropolitan Architecture) 소속 건축가 올레 스히렌(Ole Scheeren)이 설계한 인터레이스는 인구밀도가 높은 싱가포르의 주택난을 해결하면서도 누구나 살고 싶은 공공주택을 짓는다는 목표 이래 추진됐다. 기존 아파트 건축 방식이 블록들을 일직선 수직으로 쌓아올리는 것인데 반해, 스히렌은 5~6층 규모의 블록을 엇갈리게 쌓아 독특한 외양을 창출했다. 31개의 거대한 블록들이 대각선 형태로 최고 25층까지 쌓아올려진 구조는 자연스럽게 층마다 다양한 모양의 공간을 만들어냈고 이 자리에 공중정원을 들였다. 일직선 수직 아파트라는 고정관념을 깬 파격적 모습으로 싱가포르 공공주택 디자인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

싱가포르 정부와 사업자, 건축설계사무소는 이 목표를 위해 서로 협력했다. 정부는 파격적인 디자인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사업자는 비용이 더 들지만 렌드마크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고 건축설계사무소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건축설계사무소는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해 디자인했다. 눈여겨볼 점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능 측면에서도 소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많은 쌈지 정원, 수영장, 미팅룸, 도서관 등 편의시설을 갖췄고 이웃간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수평적 공간'도 확보했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개발사업은 오랜만에 정부가 민간에 파격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벌이는 도심 대규모 고밀도 개발사업이다. 서울의 뉴타운사업이 동력을 상실했고 민간 재개발·재건축사업을 묶어놓은 상태에서 이 사업은 서울의 주택공급에 숨통을 터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사업이 성공해야 서울의 주택난이 완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파격 지원하겠다는 말에 그치지 말고, 성남 대장동 사업처럼 적극 나서서 걸림돌을 제거하고 인허가 등을 전광석화처럼 처리해줘야 한다. 단, 이익을 특정인에게 독점시킨 대장동 사업과 달리 모든 참여자에게 골고루 배분하는 '특혜의 공유'가 전제돼야 한다. 그런 다음 건축디자인적으로, 기능적으로 누구나 살고 싶은 주거공간을 창출해야 한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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