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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의 세상읽기] 노무현의 손녀, 한동훈의 딸

   
입력 2022-06-12 18:51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홍성철의 세상읽기] 노무현의 손녀, 한동훈의 딸
얼마 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손녀인 노서은 양이 서울대학교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노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윙크하며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던 천진난만했던 소녀가 벌써 대학 갈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의 성장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신 언론은 서은 양의 서울대 합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스무 살에 인생이 모두 결정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서은 양은 '글로벌인재 특별전형'을 통해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최근 합격하여 9월 입학을 앞두고 있다. 9월 입학은 해외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지원자를 위한 특별전형의 결과다. 서은 양은 LG경영연구원 소속으로 베이징에서 근무 중인 아버지 노건호 씨를 따라 중국으로 이주, 베이징 소재 미국계 국제학교에 다녔던 것으로 전해진다.
재외국민 특별전형은 부모와 학생 모두 3년 이상 해외에서 거주한 경우를 대상으로 하는 3년 특례(3특)와 해외에서 12년 이상 교육을 마친 자를 대상으로 하는 12년 특례(12특)로 구분된다. '3특'의 정원은 대학 정원의 2% 이내로 한정돼지만 '12특'의 정원은 대학 자율이다. 그렇기에 다른 입학전형에 비해 '12특'의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하지만 학벌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서울대 합격은 엘리트로 가는 지름길로 받아들여진다. 노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 후보 시절 "서울대가 없어지는 것이 좋겠지만 없애겠다고 공약하지는 않겠다"며 학벌 타파를 외쳤지만 손녀는 그 학벌을 올라탄 셈이다.

학력이 스무 살 시절 한 번의 검증으로 끝나면서 이후의 노력이나 성취는 폄하되거나 묻혀지게 된다. 명문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학력을 감추거나 구태여 밝히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덕수상고를 졸업한 뒤 한국신탁은행에 취업하여 당시 야간인 국제대학교를 다녔다. 이후 입법고시와 행정고시를 합격했지만 그는 국제대학교 출신보다는 덕수상고 출신으로, 고졸신화로 포장되었다.

지난 6월 1일 경기도 지사 선거를 앞두고 열린 TV토론에서 강용석 무소속 후보는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그동안 학력을 갖고 부풀리는 사람은 수도 없이 봤는데, 학력을 축소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며 "행시 합격할 때 이미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왜 고졸 신화가 되는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지난 5월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에서는 한동훈 장관 지명자의 딸이 언론의 집중 관심을 받은 적이 있다. 한 후보자의 딸은 현재 제주도에 위치한 외국계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 학교는 외국 명문대학의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다. 비싼 등록금 논쟁에다 보고서 표절과 대필 의혹까지 더해졌다.

아직 대학 지원서를 쓰지도 않은 고등학생의 글을 놓고, 의혹을 더하는 것은 한 장관에 대한 흠집 내기 차원이 컸다. 또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딸 조민 씨처럼 철저한 조사를 당해보라는 심리도 덧붙여졌다. 하지만 한 장관의 청문회는 한국 사회에서 학력과 학벌이 어떤 의미인지 사회적 고민으로 확장시킬 좋은 계기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청문회에서 한 장관 딸에 대한 논란은 '한국3M'과 '이모'씨 같은 '코미디 어록'으로만 끝을 맺었다.

12년 특례입학이나, 외국계 국제학교는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특혜의 지점에 놓여 있다. 오래 전부터 한국의 엘리트들이 자녀들에게 학벌을 만들어주는 과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대학 합격은 온전히 개인의 노력으로 성취되는 결과물로 받아 들여왔다. 특히 국내외 명문대 합격은 고교시절 성실함과 두뇌의 우수함을 보여주는 증표와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학벌이 부모의 지원 아래 만들어지면서 세습 지위로 점차 변하고 있다. 그만큼 사회의 역동성이 점차 줄어드는 것이다.

2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은 "학벌주의는 평생 우려먹는 신분증"이라면서 그 학벌의 병폐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고민하였다. 그러나 이후 학벌주의 병폐 해소에 나서지 못하면서 학벌주의는 더 공고하게 고착화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박근혜 정부의 성시경(성대-고시-경기고), 문재인 정부의 유시민(유명대학-시민단체-민주당), 윤석열 정부의 서영남(서울대-영남-남성) 등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대학을 빗댄 신조어들이 만들어졌다.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학벌의 무게는 언제나 위력적이다. 총체적 무기력에 빠진 것일까. 요즘은 어느 누구도 학벌의 폐해를 개선하려 나서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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